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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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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3장 6절 주석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라는 문장이지만 원래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거의 흡사한 문장이다. 앞서 1장 12절에서 ‘바-야 엘로힘 키-토브’(וירא אלהים)였다면 여기서는 ‘바-테레 하-이샤 키 토브’(ותרא האשה כי טוב)이다. 하나님이 열매 맺는 나무를 내도록 한 직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였다면 여기서는 여자가 하나님처럼 ‘보기에 좋은’ 것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보는’(רָאָה) 행위는 두 단계 인식의 연쇄를 일으킨다. ‘먹기’(מַאֲכָל)를 위한 목적 외에도 눈을 위한 욕망(תַּאֲוָה), 지혜를 위한 탐욕(חָמַד)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대부분의 독자는 이러한 인식의 연쇄가 ‘열매’를 보고 깃드는 줄로 착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흔히 ‘선악과’라는 축어(본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익숙하다보니 사과 또는 복숭아 같이 생긴 ‘열매’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자는 ‘열매’를 보고 탐욕을 느낀 게 아니라 ‘나무’를 보고서 탐욕을 느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열매를 잉태하는 나무’(에츠 오세 페리)를 보고서 탐욕이 깃든 것이다(2:9 참조).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열매’의 기능성이 아닌 ‘나무’의 기능성에 대한 탐욕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자기와 함께하는 남편에게 열매를 건넨 이유이기도 하다. 이어서 곧바로 ‘벌거벗음’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지기에 적지 않은 이단들이 성적인 알레고리로 악용한 사례가 많았지만, 이 ‘처음 죄’에 성적인 모티프가 작동하는 요인은 그 처음 죄가 인식의 죄질임을 방증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십계 중 가장 마지막 계명인 “네 이웃의 집(소유)을 탐내지 말라”는 가장 약한 계율이 아니라 앞서 모든 죄목을 포괄하는 인간의 인식이라는 사실이다. 이 10계의 ‘탐내다’로 번역된 카마드(חָמַד)가 이 나무를 보고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시각의 힘,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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