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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8절 주석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이것이 살인 직전의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극적(劇的)으로나 문법적으로나 참으로 어색한 문장이다.
요메르(יֹּ֥אמֶר, 고하니라)는 아마르(אָמַר, 말하다)의 미완료형으로서 이 미완료에서 이어지는 ‘그 후에’가 무난한 문장이 되려면 ‘고하니라’에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뭐라고 고했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가인이 아벨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가려진 것이다.
그 바람에 불가타, NIV, NRS 등은 대부분 “들로 가자(Let us go out into the plain/field)”를 의역해 넣고 있다.
이는 칠십인 역을 비롯한 사마리아 오경 같은 원전들이 그렇게 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에는 “들로 가자”는 말이 없다. KJV, NAS 그리고 독일어 성경 LUO 등은 맛소라 본문을 따라 가인이 아벨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는 ‘공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사본학적으로는 난제이지만 해석학적으로는 모종의 기도(企圖)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9장에서 아버지 노아가 벌거벗은 것을 목격한 다음 둘째 아들 함이 반응하는 대목이 유사한 까닭이다.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 ’) 말하였다”(창 9:22)고 하는 장면은 마치 “가인이 동생에게 (‘ ’) 말하였다”(창 4:8a)고 한 것처럼 뭐라고 말했는지 목적어가 공백인 것이다.
가인이 동생에게 말한 후에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참상이 벌어진 것과 함이 돌이킬 수 없는 저주를 받는 동기가 그 형제들에게 (‘ ’)라고 말한 것은 매우 정교한 해석학적 유사이다.
가인의 아우 아벨이 드린 제사는 ‘침묵’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함의 두 형제가 받는 상대적인 축복 역시 함의 알 수 없는 (‘ ’) 말과는 대조적인 ‘침묵’이다.
의인은 침묵하고 악인은 기억되지 못할 말을 한다.
이리하여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도구를 쓰는 자/ 농경인인 가인은 그 가나안의 원천 토양이 된 것이다.
카인(קַיִן)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카나안(כִּנַעַן)이라는 지명과 역류를 일으키는지는 앞서 4장 1절에서 일러두었다.
가인은 토라의 주역인 이스라엘의 정복 대상인 토양인 동시에 그들 자신의 본성을 표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