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아내가 누구인가에 관하여 흔한 논의 몇 가지가 있다. 1) 족보에서 생략된 근친으로 보는 견해, 2) 창세기 1장의 사람과 2장의 아담을 다른 개체로 간주하고서 전자의 개체가 이룬 어떤 종족으로 보는 견해, 3) 6장에 등장하는 네피림과 연관지어 해결하려는 견해.
1)항만 상식적인 추론이고 2)항과 3)항은 개론에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불건전한 추론이다. 하지만 1)항의 추론은 상식적일 뿐이지 맞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가인은 에덴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도망한 것이다. 도망친 거점에서 성을 건축했다는 말은 그 성의 기능에 관한 깊은 이해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 도피성의 이름을 자기 첫 아들의 이름을 붙여 에녹이라 칭하였다.
창세기에서 에녹이라는 성명을 가진 인물이 가인의 첫 아들 외에 세 명 더 있다. 하나는 야렛의 아들(창 5:18), 다른 하나는 미디안의 아들(창 25:4)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르우벤의 아들이다(창 46:9).
이들에게서 연관성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에녹은 가인의 자손 중 라멕의 4대조 조상이다. 죽은 아벨 뒤에 태어난 셋의 계보에도 이들 두 이름이 등장한다. 셋의 계보에서 에녹은 라멕의 2대조 조상이다. 연관성은 없다. 하지만 셋의 후손 라멕은 7대손인 반면 가인의 후손은 6대손뿐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가인(카인)의 이름을 딴 두발카인이다. 게다가 셋의 후손 라멕의 아버지 이름이 므두셀라(מְתוּשֶׁלַח)이며, 가인의 후손 라멕의 아버지 이름은 므드사엘(מְתוּשֶׁלַח)이다. 음가가 유사하다. 가인의 후손 므드사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셋의 후손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화살촉의 사람’이란 뜻이다.
가인의 후손 므드사엘이란 이름의 뜻이 낙관적인 데 반해 셋의 후손 므두셀라의 뜻은 더 비관적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첫 번째 살인자 가인의 마지막 후손이 집단 학살자임을 암시하는 두발가인으로 막을 내리는 반면 ‘화살촉의 사람’ 므두셀라는 바로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제8의 사람 노아의 조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에녹이라는 이름은 아담의 장손자 이름이면서 야곱의 장손자의 이름도 역시 에녹이다. ‘실패한 자’로서의 강력한 유사를 동반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가인을 단지 악의 화신이요 거악의 족보로 일반화하는 것은 창세기에 관한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는 선입견이다. 선택 받은 자들은 종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실패한 자들은 도피성에서 문화적 생명을 도모한다는 것이 이 타나크 첫 권에 담긴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가인의 일가도 창조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에녹으로 상징화된 이 도피성은 아마도 여호수아가 점령한 가나안 영토에 설치한 도피성(또는 그 중 어딘가 한 곳)을 표지할 것이다. 특히 유다 지파 영유지 중 어딘가와 연관 있는 전승 입자일 수 있다. 유다의 영유지에는 ‘가인’을 포함한 총 10개소이지만 공교롭게도 70인역에서는 여호수아 15장 57절에 나오는 이 유다의 한 도읍 ‘가인’만 빠져 있다.
맛소라 사본을 근거로 학자들은 가인 성읍 바로 앞에 나열된 사노아 성읍의 소유격으로 간주하려는 경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가인이 미디안에 거점을 두었던 겐 족속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참조 민 24:33; 삿 4:11) 앞서 미디안(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에게서 나은 후손)의 아들 이름이 에녹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나게 한다.
이스라엘을 사막에서 인도해낸 모세의 강력한 후원자인 장인 이드로가 바로 이 겐 족속인 미디안 사람임을 앞서 일러두었다. 이리하여 아담의 첫 번째 아들 가인은 첫 번째 살인자인 동시에 도피성에서 자기 문화를 구축하는 모든 자들의 상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