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곡해한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재즈를 곡해한 영화 위플래쉬(Whiplash)

 
 
친애하는 친구분들이 감동을 많이 받은 영화인데, 위플래쉬에 대해 좀 미안한 비평을 해야겠다.

Whiplash is a 2014 American drama film written and directed by Damien Chazelle based on his experiences in the Princeton High School Studio Band. http://www.imdb.com/title/tt2582802/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 선생님이 가장 혐오스러워 하는 말,

“Good Job!”(참 잘했어요)라고만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lol~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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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작품이지만 가능성 있는 부분을 캐내어 발견해주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칭찬해주는 방법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탁월한 작품이지만 그 부분을 못 본척하고 잘 안 되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들춰내 채찍질 하는 방법이다.

위플래쉬의 선생이 바로 후자이다.

WHIPLASH - 2014 FILM STILL - JK Simmons as Fletcher - Photo Credit: Photo Credit: Daniel McFadden Courtesy of Sony Pictures Classics

WHIPLASH – 2014 FILM STILL – JK Simmons as Fletcher – Photo Credit: Photo Credit: Daniel McFadden
Courtesy of Sony Pictures Classics

그는 밴드 지휘에 목적이 있던 게 아니라, 제자로 하여금 “극한의 경지를 넘게 해주려 했다”고 회고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 대개는 제자의 꿈을 키워준다기보다는 제자로 하여금 선생인 자신의 꿈을 꾸게 만드는 사례가 태반이다.

제자 하나가 그 극한 트레이닝을 극복하고 일류 수석 연주자가 되었지만 자살하는 일이 영화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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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꿈은 이뤘는데 자기 꿈이 아니기 때문.

자고로 선생은 제자로 하여금 제자 자신의 꿈을 꾸게 만들어줘야지 선생인 자기 꿈을 강제해놓고선 꿈 꾸게 만들었노라ㅡ고 말하는 것처럼 사디스트도 없는 것이다.

대개의 사디스트는 남의 꿈을 자기 꿈의 질료로 삼는다.

예술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

재즈가 그처럼 가학적인 음악인지는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재즈는 ‘자유’가 아니었던가?

극한의 훈련을 통해서 ‘자유’를 표현한다?

‘자유’를 어떻게 노예 훈련을 통해서 표현하나?

제자에게 앙갚음 하는 백인 재즈 선생을 등장시켜

재즈는 ‘노예 훈련’이라고 가르치다니…

골때리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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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자유로운 것이다.

창세기가 이제 절반을 넘어서자

“(저기~) 꿈꾸는 자가 나타났다”(창 37:19)

라는 기막힌 표현을 쓰고 있다.

꿈은 배워서 꾸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도 매 맞으면 잘 그린다!

음악은 매 맞으면서 배운다는 게 이해가 되었는데,

그림도 매 맞으면 잘 그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놀랐었다.

그러나 음악이든 그림이든 그 이상 경지의 표현은 ‘자유’로만 가능하다.

재즈와 그림에 능한 노예들은 대개 자유, 즉 꿈이 있었을 것이다.

남의 꿈이 아닌 자기의 꿈.

자기 자신의 진정한 꿈은

내가 임의로 지어내고 만들어낼 수 없는

타력(Hetero Esoteric)이라는 것이 또한 역설.

그 꿈이 자기 욕심(whiplash)인지, 심리적 망상(delusion/illusion)인지,

아니면 운명(predestination)인지는 ‘자유’로 판독 할 수 있다.

전자들은 대개 자유를 좀먹는 강박에 사로잡혀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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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이 글 원본은 지난 Lent 시리즈 중 27/40번째로 게시한 글이었는데(2015.3.20) 찾는 분이 있어 따로 블로그에 게시.
* 시편읽기: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편 119:45)
* 제목: 꿈꾸는 자 | 창세기 37장 19절.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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