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에 사드(Thaad)가 뭔 말이냐ㅡ 싶겠지만 본문의 맥락 상, 이글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정치적 지형과의 관계를 담고 있다.
매일묵상/ 2016년 3월 1일 화요일
본문: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0 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ㅡ에스겔 17:1-10.
관찰:
1.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5)
2.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고 했다 (8)
묵상:
3. 실존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읽으려면 어찌해야 되는가를 묵상함.
느낀점:
4. 친일파, 친러파, 친미파, 친중파… 정치적 컴플렉스를 벗지 못하는 우리여.
해설:
5. 위 본문만을 읽으면 도대체 무엇에 대한 상징과 비유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 다음 본문을 보면 대략 무엇에 대한 상징이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너는 반역하는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
13 그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거늘
15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16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17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18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ㅡ에스겔 17:11-21
고대 이스라엘도 워낙에 약소한 나라였기에 지정학적 강대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본문은 특히 남 유다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미지인데, 팔레스타인 지역을 강타한 바벨론의 무력은 한창 전성기였던 반면 이집트는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오랜 강대국이기는 하나 다소 쇠약해져가는 중에 있는 나라였다.
바벨론 포로기를 전후로 이스라엘의 정치적 향배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큰 동선을 이루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우리야 성경 텍스트로 읽을 뿐이지만 그것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친 바벨론파 종교인의 발언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노선에 반해 궁중 예언자들의 예언은 반(反) 바벨론 노선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이 대표적인 예다.
그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강대국 간의 식민지 정책의 차이를 견지할 수 있다. 바벨론과 이집트는 식민지에 대한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는데, 바벨론의 경우 식민지의 지배자 계층은 모두 숙청하거나 포로로 데려가고 남은 하류민들에게 로컬 영토를 분배하는 정책을 썼던 반면, 이집트는 지배자 계층의 권력을 유지해주는 대신 봉신의 의무를 부여하였다. 자연스레 이스라엘의 정치세력은 바벨론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세금만 잘 거둬 갖다 바치면 자신들의 정치 기반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레미야를 위시한 정통 예언자들은 바벨론을 하나님의 예비한 옥토로 내다봤던 모양이다.
저 본문에 나온 그림 언어의 도상은 이와 같이 바벨론 영토에 이스라엘 민족을 일부 심어 후일을 도모하려던 하나님의 당초 계획에 반하여, 다른 독수리(이집트?)에 기대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을 질타하는 필치로 이해할 수 있다.
결단과 적용:
6. 고대의 존재감 없던 이스라엘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우리나라 역시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정치적 향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현대에 들어 사드(Thaad)를 둘러싼 논쟁도 예외일 수 없다.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시대에는 친 바벨론파, 친 이집트파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친일파, 친러파, 친미파, 친중파가 있는가?
독립심 강해 보이는 많은 기독교인이 예레미야와 에스겔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갈파하려는 대다수 선량한 기독교인을 사대주의자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독립심 강한 기독교인 대부분이 ‘민족’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백성을 아사(餓死)에 빠뜨린 ‘북 이스라엘’ 정권에 봉신하려 드는 일군의 하나냐들에게 침묵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저 털 많은 ‘다른’ 독수리에게 물을 구걸하는(7절) 행태와 다를 바 없는데, 그 지역 빈천한 자들에게 돌아갈 먹을 양식을 모조리 거둬 그 정권에게 봉신해 갖다 바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도리어 Thaad에 드는 비용은 아깝지만 그 비용을 ‘북 이스라엘’ 핵 무기 제조비로 봉신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는 논리로 맞서는 것만 같다.
위 개역개정에서는 그 행태를 보는 하나님의 심정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새번역에서는 좀더 명징하게 나타나고 있다.
7 다른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날개가 크고 깃이 많은 독수리다. 그런데 보아라, 이 포도나무가 뿌리를 그 독수리에게로 뻗고, 가지도 그 독수리에게로 뻗는 것이 아닌가! 이 포도나무는 새로 나타난 그 독수리를 보고 옥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물을 대달라고 하였다.
8 그 포도나무를 옥토 곧 물이 많은 곳에 심은 것은,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도록 한 것인데, 이 모양이 되고 말았다.ㅡ새번역
기도:
7. 나― 하나님의 섭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소서.
너― 하나님의 섭리를 순종하게 하소서.
우리― 우리를 옥토에 심어주소서.
그림 묵상:
cf. Lectionary, Tuesday (March 1, 2016): Psalm 39; Ezekiel 17:1-10; Romans 2: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