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24/40) 예언의 영

사순절 (24/40) 예언의 영

 
 
* ‘예수의 증언이 예언의 영’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매일묵상/ 2016년 3월 8일 화요일

 
본문: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ㅡ요한계시록 19:9-10.

 
관찰:

1.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10a)
2.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 (10b)

 
묵상:

3. 나는 예수님의 증언을 받았는가.

 
느낀점:

4. 예언의 영이라는 것을 여전히 ‘점치는 영’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설:

5. ‘예수의 증언이 예언의 영’이라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가?

게다가 저 10절 말미에 왜 그 말이 들어가 있는가?

γάρ μαρτυρία Ἰησοῦ ἐστιν τὸ πνεῦμα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예수의 증언이 예언의 영’이라는 도식만을 따로 떼어내면 이해가 어렵지만

이것은 반대로 ‘예언의 영이 바로 예수의 증언’이라는 말로 치환하면 이해가 한층 쉽다.

또한, 이것은 앞 문장에 대한 γάρ, 즉, 요한이 천사에게 절을 했다가 “하나님께만 경배하라ㅡ”는 주의와 함께 들은 말이다.

‘예언의 영’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영혼이 있듯이 ‘예언’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식의 어투다.
예언에 내재 된 영혼과도 같다는 뉘앙스로서(τὸ πνεῦμα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예수의 증언’이 갖는 속성에 비견된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하시는 증언’이란 ‘예언의 영혼과도 같다’는 표현인 셈이다.

이러한 문맥을 감안하여 풀어쓰면 이렇다.

“…(아서라 나에게 절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경배해라 (왜냐하면 저 기록된 말씀에 너희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의 영혼[예언의 영혼]이 (곧) 예수님의 (너희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성경과 설교는 예수의 증언으로 일관하게 마련이다. 또 그래야 마땅한 것이다.

그 ‘예수의 증언’이 바로 말씀, 곧 예언의 영인 셈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예언’은 점을 치는 행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결단과 적용:

6. 성경이 나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이 순환 도식은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예수에 관하여 증언하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증언(변호/ 파라클레토스)을 받는다는 추상적인 관념 신앙에만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말씀이 나를 위해 증거하는 게 된단 말인가…)

단, 아무렇게나 살아도 성경이 나를 증언하느냐…는 문제가 전혀 별개의 요건이다.

계시록에서는 기록된 성경을 그런 사람의 성경으로 전혀 고려를 하지 못했기 땜에…

 
기도:

7. 나― 예수의 증언을 받기에 부족함 없게 하소서.
너― 예수의 증언을 무시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예수의 증언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cf. Lectionary, Tuesday (March 8, 2016): Psalm 53; Leviticus 25:1-19; Revelation 19:9-10.

 
 
 


PayPalLogo2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Comments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Mi Moon (美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