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 좋은 말이 이단에게 넘어가버려…
매일묵상/ 2016년 3월 11일 금요일
본문:
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2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ㅡ이사야 43:8-15.
관찰:
1. 너희는 나의 증인 (10)
2.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0)
묵상:
3. ‘증인’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를 묵상함.
느낀점:
4. 구약성서에 나타난 원리주의(原理主義) 본문 중 꽤 센 편에 속하지만 개혁이 없는 원리주의 및 원리주의자 일체는 모조리 다 미개인.
해설:
5.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은 미국 펜실베니아의 한 성경공부모임(Millennial Dawn/ 천년 새벽 성경연구)에서 출발한 1870년산 신흥종교다. 찰스 러셀이라는 사람이 내놓은 “천년 새벽”이라는 6권 시리즈가 교의서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야웨의 첫 피조물로 간주한다. 이런 교리는 이미 교부 시절 아리우스가 주장했다가 이단 정죄를 받았음에도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뿐 아니라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는 위 본문을 위시한 구약 본문을 석의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카엘 천사장 정도로 여기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술어가 구약에서는 거의 천사를 지칭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서 말한 대로 신약의 믿음보다는 구약에 더 축을 두고 있다 하겠다.
이들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이 있다. 우선 잘 알려진 대로 ‘수혈 거부’ 문제. 레위기의 “피를 먹지 말라”(레 17:12)는 말에 ‘수혈 하지 말라’까지 소급하는 바람에 신심이 두터운 여호와의 증인 신자는 아무리 응급 상황에도 수혈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데, 문제는 의료 행위를 해야하는 의사나 간호사 중에도 여호와의 증인이 있다는 게 큰 함정.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를 쓴 의사 박경철이 환자에게 수혈을 고의로 안 하는 간호사 싸데기를 갈기는 얘기가 나온다.
그 외에 ‘병역 거부’와 ‘투표권 행사 거부’ 등의 문제도 있는데, 이유는 한 마디로 세상 권세란 성경의 괴물(리바이어던)로 보는 까닭이다. 욥기, 창세기, 요한계시록에 걸쳐 진술되고 있는 그 괴물을 이겼노라는 ㅡ혹은 그것 조차 내가 지었노라는ㅡ 일체의 신학은 덮어두고 자기네 편한 대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문제가 현실 부적응 사태로 이어지다보니 당연 종말론 같은 문제 야기. 그렇게 살다 보면 힘드니까 당연히 종말론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자고로 개혁이 없는 종교는 미개한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개혁이다.
바울도 개혁이자 세대교체였다.
개신교에는 당근 종교개혁이 있다.
심지어 종교개혁의 대상이었던 카톨릭에 조차 카운트 리포메이션이 있었다.
결국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이들이다.
결단과 적용:
6. 이렇게 되어버린 바람에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 좋은 말을 개신교도들은 사실상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은 이 본문에 등장하는 야웨께서 그 목적과 계획을 성취하신 ㅡ예수 그리스도로 성취하신ㅡ 바로 그것을 목격하고 믿는 의미에서 ‘(여호와의) 증인’.
다른 말로 하면 ‘부활의 증인’.
* ‘여호와의 증인’은 부활의 증인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만 의미가 있다.
기도:
7. 나― 부활의 증인이 되겠나이다.
너― 부활을 증언하게 하소서.
우리― 부활의 증인되게 하소서.
cf. Lectionary, Friday (March 11, 2016): Psalm 126; Isaiah 43:8-15; Philippians 2:2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