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버지를 ‘아는’(ἔγνω) 원리

우리가 아버지를 ‘아는’(ἔγνω) 원리

 
 
* 이글은 우리가 ‘아버지를 안다’고 했을때 그 ‘아는’ 방식에 관해 쓴 글이다.
 
 
사진으로 보니 제법 광택이 나지만 실물은 볼품없이 낡은 30-40년이 족히 넘은 시계다.

30여 년 전에 아버지께서 새 시계를 차면서 이걸 금고에 재워 두는 것을 내가 어느 날 보고서는,

“아버지 그 시계 저 주세요.”

했더니 어린 나에게 선뜻 내줄 정도로 당시에도 낡은 시계였다.

근 10년을 손목시계 없이 살다가 오랜만에 차니까 좋다.
매우 낡았는데도 좋다.
아버지 것이니 좋다.
아버지는 범인(凡人)의 삶을 살다 가셨는데도
(낡은 시계가) 참으로 영광되다.

내가 효자여서냐?
천만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시계는 좋은 걸 차고 볼일이야??’
그런 것이 아니다. (낡았다니까)

아마도 내 안에 분여된 ‘그’가 반가워하는 것이다.

시계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했던 모든 말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일곱 가지만 추려보면,

1. 아버지는 봄을 탔다. 봄에 대해 알려줬다. 사업상 비수기인 겨우내 모든 게 꽁꽁 얼어붙지만, 봄이 되면 반드시 ‘움직인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어쨌든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실현되곤 했다. 계절을 통하여서 상황을 설명하셨는데 이것은 내가 오늘날 알고 있는 ‘봄’에 대한 이해다.

2. 아버지는 가을도 탔다. 황금 물결치는 벼들을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가을이 되었다.

3. 내가 사회에 입문할 때는 이런 말을 하셨다.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고. 나이가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속담을 하나 알려주셨는데, “거북이 등껍질보다 더 단단하게 사람의 연륜이다.” 라고 하셨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지난해도 알았고, 지지난 해도 알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안다.

4. 아버지는 나에게 다음 세 가지 금기를 주지시켰다. 1) 빚보증 서지 마라. 2) 도박하지 마라. 이 둘은 자기가 써보지도 못하고 날리는 행위이므로 이런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하였느니라. 그리고 3) 평생 민물고기는 입에도 대지 마라.

5. 사람은 두 가지 일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지금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 이것을 가장 못지키고 있다’)

6. 돈을 쫓지 말아라. 그러면 돈이 오지 않는다. 일을 좋아 하다보면 돈은 쫓아오는 법이다. 돈은 쫓아오는 것이지 쫓아가는게 아니다.

7. 나에게도 내 인생이 있다??!

 
이 일곱 가지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것이었다.

젊은 시절에 참으로 충격이었다.
내 이 어린 생각 때문에,

‘부모들은 날 위해 있는 것이지 어찌 자기 인생이 있다는 것인가?’

그 말의 의미까지 지금은 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의 분여로 알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자꾸 발견하게 되지 않던가?

따라서 오늘 본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도 중요하고 ‘아는 것’도 중요한데,
‘아버지’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알지 못하면 아버지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
―요한복음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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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알아야, 알았삽고…
온통 ‘알다’ 천지다.

따라서 우리가 천국(또는 영생)에 들어간다― 라고 했을 때, 천국은 1만원, 2만원, 3만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어떻게 알겠는가.
아들인 내 안에 분여된 아버지가 아니고서야 어찌 아버지를 알 수 있겠는가―

아는 것은 석/박사가 아니라, 내 시간이 아버지의 분여된 시간이라는 사실의 앎인 것이다.
(저 시계를 그가 반가워 하는 이치)

그리하여 오늘 본문에서도 이 강력한 Aorist가 중첩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ἔγνω, ἔγνων, ἔγνωσαν…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방식으로 아버지를 소개하시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우리에게.

에필로그.

잡히시기 직전의 마지막 기도가 담긴 이 17장은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

“아버지여 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시간(ὥρα)이 이렇게 나에게 임하고 있다ㅡ

 

* 2016년 5월 8일자 부활절 후 제7주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 성서일과, 요한복음 17:20-26. (cf. 행 16:16; 시 97; 계 22:12~14, 16~17, 20~21; 요 17:20~26.)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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