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방법 (왕상 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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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방법 (왕상 8:1-21)

 
 

매일묵상/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본문: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칠월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저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 채가 긴 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9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2 그 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섰더라
15 왕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17 내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18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19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허하신 대로 내 부친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21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저희와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ㅡ 왕상 8:1-21

관찰:

1.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두는가? (16절)
2.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는 말씀을 언제 하심? (12절)

묵상:

3. ‘내 이름’이 3회나 반복되고 있다. 성전의 용도는 그것을 두는 곳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두는고? 써서 걸어두란 소린가, 조각도로 새겨 놓으란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성전에 오면 ‘내 이름’을 부르라는 말. 어떻게 불러? 기도할 때.

느낀점:

4. 성전이라는 공간이 없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큰 소리로 마음 놓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쉽다. 그러나 막상 성전이 생기면 딴 짓들을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적용과 결단:

5. 성전(건축)을 혐오하는 이 시대에 특별히 성전 사모함을 회복해야 할 것이며, 또한 성전의 용도를 바르게 활용하는 마음을 유지해야 할 것.

해설:

6. 토라 전반에 내재된 성명신학(the Name Theology)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존재론적인 ― 존재의 형식과 방식에 관한 ― 의미로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계약신학과 맞물려 그러하다. 신약성서의 집필자들은 예수의 존재론적 형식을 그 이름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것은 다분히 실천적이면서도 본질의 복원에 다가서는 것이었다. 가령 그것은 “내 집은 만인의 기도하는 집”(막 11:17; 21:13)이라는 이사야 56:7의 인용과 역설은 형이상학적 성명신학을 파괴하고 그 본질에 종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교회에 왔으면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은 통상) “흑암 속에 숨어 계시겠다”고 해온 그 이전의 현현의 방식으로부터 세대교체를 이룩한 다윗-솔로몬의 성전신학으로서 의의에 상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조. 시 18:11; 97:2)

기도:

나―하나님의 이름을 둘 성전을 사모하기를
너―하나님의 이름을 훼손치 않기를
우리―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우리가 되기를…

cf. Lectionary, Wednesday (August 19, 2015): Psalm 36; Genesis 47:13-26; Mark 14-21 OR Psalm 101; 1 Kings 1-21; Mark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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