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분쟁은 어떻게 피어나는가 / 세례에 대한 간사한 마음 / 세례의 통일성 ㅡ

 

매일묵상/ 2016년 1월 19일 화요일

본문: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ㅡ고린도전서 1:3-7

관찰:

1. 교회를 칭찬하고 있다 (3-9절)
2. 교회를 나무라고 있다 (10-17절)

묵상:

3. 분쟁은 어떻게 피어나는 지를, 그리고 어떻게 소멸시키는 지를 묵상함.

느낀점:

4. 앞부분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감사하노니”,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에 풍족함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등 교회를 향한 칭찬과 축복 일색이라서 실족할 뻔 하였다. 완벽한 교회, 완벽한 목회, 역시 바울인지라 사람 열매도 많은가 보구나 하고서…
그러나  곧바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는 토운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고 안도 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서.

해설:

5. 초대교회에는 분파들이 존재했으며 특히 고린도 교인 중에는 각기 다른 개인의 충성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령 아볼로 같은 설교자를 들여옴에 있어 몇몇 사람은 보다 언변에 뛰어난 그의 재능과 지혜를 선호한 것이며 그와는 달리 바울은 사람의 지혜보다는 ‘지혜로운 어리석음’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집중하였다(참조, 1:18-2:5). 이러한 분파 주의를 세례의 통일성을 통해서 교정하고 있다.

결단과 적용:

6. 과거에 어떤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맡아 양육하는 사역의 기회가 있었다. 어느 해인가 세례예식이 있던 해에 세례 받을 후보자 명단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교회 중직의 자제 하나가 세례를 신청하지 않는 것이었다. 몇 번을 독려하고 그 부모에게도 직접 “OOO도 세례 받아야지요?”하고 묻는데도 실실 웃기만 하고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직감적으로 ‘아ㅡ 이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려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실제로 교회를 떠났다. 아니 그런데, 내 비록 담임 목회자는 아니지만 심히 불쾌했던 것이 교회를 떠날 때는 떠나더라도 세례는 받아야 할 것 아닌가? 당시에 그 교회는 매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 그 가정은 ‘받아도 여기선 안 받아, 기왕이면…’ 하는 태도가 역력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간사한 세례를 경멸한다. 그 세례는 마치 부유한 교회와 목회자에게는 기꺼이 세례를 받고, 빈약한 교회와 목회자에게서는 세례를 사절하겠다는 세속적 기호에 따른 세례이지 이 본문에서 통일성을 이루는 세례와는 관련이 없다. 더 나은 세례를 위한 영적인 추구는 있을 수 있어도, 세속적인 추구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세례는 하나다.

그 가정은 그 교회가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하자 다시 돌아왔다.

기도:

7. 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를 보전케 하소서
너―세례를 실천하게 하소서
우리―세례로 하나되게 하소서

그림묵상:

Lorenzo Lippi (1606–1665), The baptism of Saint Paul, oil on canvas, 149 x 202 cm
Lorenzo Lippi (1606–1665), The baptism of Saint Paul, oil on canvas, 149 x 202 cm

cf. Lectionary, Tuesday (January 19, 2016): Psalm 145; Song of Solomon 4:1-8; 1 Corinthians 1:3-17.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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