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속하는 원리에 관하여…
매일묵상/ 2016년 3월 15일 화요일
본문:
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ㅡ요일 2:18-28.
관찰:
1.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21)
2.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27)
묵상:
3.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우리(자녀들)의 관계를 묵상함.
느낀점:
4. 아버지는 흔적(στίγμα)이다.
원형(ἀρχή /아르케)이 아니라.
이 오명(汚名)이라고 하는 ‘스티그마’ 개념을 ‘흔적’으로 바꿔놓는데 성공한 것이 초기 그리스도교 설립자들이다(Cf. 갈 6:17).
해설:
5. 아버지로부터 폭력에 시달린 사람은 ‘난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ㅡ’ 하고 자라지만
어김없이 폭력 아버지/어머니가 되고 만다.
아버지로부터 잔소리에 시달린 사람은 ‘난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ㅡ’ 하고 이를 갈며 자라지만
결국에는 아버지 이상으로 말 많은 인간으로 자라난다.
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로부터 단 한 번도 매를 맞은 기억이 없고,
심지어 “이 녀석이ㅡ” 소리 한 번 들어 본 적이 없어 ‘난 아버지 처럼 되지 말아야지ㅡ’ 하고 다짐하지만
그도 아버지 상을 벗어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앞선 폭력 만큼이나 오명(汚名)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아르케라기보다는,
스티그마 곧, 흔적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그 흔적으로 그의 아비가 누군지 알아보게 된다.
이와 같이 결탁된 아버지와 아들의 흔적을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적그리스도다.
그가 자녀가(18, 28절) 못 되는 이유기도 하다.
결단과 적용:
6.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 간의) 이 벗어날 수 없는 과녁과도 같은 결함이 원죄(ἁμαρτία)인 것을
현대인들은 도리어 거꾸로 그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 속에서 원죄 하마르티아의 의미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 오명을 자신의 흔적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그 영혼에 구원이 임하지 않던가? 해방, 열등감 따위.
이와 같은 스티그마(오명)와 하마르티아(원죄/결함) 구조 속에 예수의 EGO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아의 부끄러움 혹은 영광으로 교차해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27).
아버지가 흔적(στίγμα)이기 때문에.
원형(ἀρχή /아르케)이 아니라.
기도:
7. 나― 마지막 때에 깨어있게 하소서.
너― 적그리스도를 주의하게 하소서.
우리―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게 하소서.
cf. Lectionary, Tuesday (March 15, 2016): Psalm 20; Judges 9:7-15; 1 John 2: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