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으로 흔히 범하는 오류들

마태복음 13장으로 흔히 범하는 오류들

 
 

 
마태복음 13장을 설교하는 분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몇 가지를 바로잡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총 8개 비유로 구성된 이 장으로 틀린 설교를 하는 원인은 두 가지인데 언제나 그렇듯 물량주의 가치관 속에서 이 본문을 대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이들 8개 비유가 한 세트로 딱 짜여있는 비유란 사실을 간과하고 모두 조각내 제각각 설교하는 탓이다.

(1) 네 종류의 네 번째 땅의 비유

우선 네 가지 땅에 관한 비유는 그동안 여러 차례 설명을 해온 터라 이미 접한 독자는 다음 항으로 건너 띄어도 무방하다. 처음인 독자는 다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씨 뿌린 밭의 비유는 수많은 비유 가운데 가장 널리 인용되는 비유 중 하나이지만 마가복음에서 30배, 60배, 100배 맺던 결실이 왜 여기 마태복음에 와서는 100배, 60배, 30배, 역순으로 뒤집혔는지 발견하는 이도 없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주석가 혹은 설교자도 없다.

마가복음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들과 대조된 좋은 옥토에서의 결실이므로 그 자체가 마치 성장의 한 과정인 것 같다. 하지만 마태는 길가, 돌밭, 가시떨기들과의 대조라기보다는 좋은 옥토 안에서의 결실의 차이, 즉 동일한 옥토 안에서 어떤 사람은 100배이지만 어떤 사람은 30배 밖에 안되더라는 저의를 어조에 품고 있다.

img: http://philadelphiamtc.wordpress.com/

결과적으로 마가복음에서는 교회 바깥 세상과의 대조로서 좋은 옥토를 교훈했다면 마태는 공동체 내적인 문제, 즉 공동체 안에서 야기되는 결실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마태는 카르포스(열매) 신학임을 유념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단지 배수의 역순에서만 유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8절에서 마가와 달리 첫 접속사 카이(kai)를 제거 하고 각 배수에 호(o)라는 관사와 함께 but(de)으로 끊어주고 있는 문법에서도 드러나는데.., 복잡하니 문법은 여기까지만 해두자.

관심있는 분만 아래 참조.

(희랍어 폰트가 모바일에서는 깨질 수 있다.)

ἄλλα δὲ ἔπεσεν ἐπὶ τὴν γῆν τὴν καλὴν καὶ ἐδίδου καρπόν, ὃ μὲν ἑκατόν, ὃ δὲ ἑξήκοντα, ὃ δὲ τριάκοντα. – Mt.13:8

But other fell into good ground, and brought forth fruit, some an hundredfold, some {but} sixtyfold, some {but} thirtyfold. – Mt.13:8  생략된 예이다.

이렇게 다시 번역할 수 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그러나 어떤 것은 육십 배, 그러나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아래 마가의 문장과는 다른 조처가 아닐 수 없다.

καὶ ἄλλα ἔπεσεν εἰς τὴν γῆν τὴν καλήν, καὶ ἐδίδου καρπὸν ἀναβαίνοντα καὶαὐξανόμενα, καὶ ἔφερεν ἓν τριάκοντα καὶ ἓν ἑξήκοντα καὶ ἓν ἑκατόν.

And other fell on good ground, and did yield fruit that sprang up and increased; and brought forth, some thirty, and some sixty, and some an hundred. – Mk. 4:8

어쨌든 마가 처럼 100배를 향한 오름차순이면 긍정형의 비유라 하겠지만 여기서는 부정형인 게 명백하다. 거기다가 ‘가라지’ 비유를 통해 그 부정의 원인에 아예 쐐기를 박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이 첫 번째 비유의 표제는 ‘네 가지 땅의 비유’라기 보다는 ‘네 번째 땅의 비유’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 ‘네 번째 땅의 비유’에 관해 2주 전에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악마의 땅, 환란의 땅, 유혹의 땅, 좋은 땅.
우리가 딛고 선 땅은 이들 네 가지 중 하나다.

뿌린 즉시 악마가 날아와서 먹어버리는 길 가이면 그곳은 악마의 땅이다. 그리고 흙이 모자라 뿌리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얕다면 환란의 땅이다. 뜨거운 햇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타버리고 만다.
흙의 깊이가 넉넉하지만 쭉쭉 자라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가시덤불 같은 것들이 얽혀 있어 자꾸만 가로 막기 때문이다. 이런 기운이 있는 땅은 유혹의 땅이다.

끝으로 좋은 땅.
오로지 이곳만이 결실을 맺는다.
그런데 이 네 번째 땅마저도 그만 수확이 불규칙하다.
언제나 30배, 60배, 100배가 아니다.
100배에서 60배, 30배로 푹푹 감소하기도 한다.
땅도 좋고 씨앗도 문제가 없건만 왜 수확이 떨어지는 걸까?

그것은 바로 가라지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독보리>로 알려진 이 가라지가 어떻게 생겨났느냐-
악마가 이 좋은 땅에도 날아든 것일까?
이 네 종류의 땅 이야기는 마가, 누가, 마태, 모두 기록하고 있지만,
이 네 번째 땅 역시 안전지대가 아님을 경고하는 것은 오로지 마태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그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지 않고,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마치 그 감소의 원인인 것처럼 곧바로 ‘가라지’ 이야기와 연결하는 것도 마태뿐이다.

주로 목사들은 말 안 듣는 사람을 ‘가라지’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좋은 땅, 좋은 씨앗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목사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가라지를 뿌렸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수확이 100배인지, 60배인지, 30배인지는 추수 때 그때 가봐야 안다는 게 함정.

* 2014.7.13일자. 성령강림 후 5주 | 마 13:1-9, 18-23. (cf. 창 25:19-34; 시 119:105-112 혹은 시편 25; 롬 8:1-11.)

https://www.facebook.com/MiMoonChurch/posts/673221619435186

(2) 겨자씨 한 알의 비유

씨들 중 꽤 작은 축에 속하는 겨자씨가 아주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깃들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깐, 이 비유 역시 중다해지는 부흥의 비유로 많이 설교되어 왔다. 그러나 그 설교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자 나무 실물을 보고서는 실망을 하고 말았다.

img: http://dqhall59.com/israelphotosIV/mustard.htm

그러자 “외형을 보고 믿음을 평가 해선 안 된다”는 식의 설교가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실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었다는 표현은 마태의 비판적 역설이다.

앞의 네 가지 땅 비유 중에서 첫 번째 땅(길 가)에 뿌렸던 씨앗을 새들이 다 집어삼켰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새는 악마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에 이어지는 누룩 비유 역시 부정형 비유라는 사실은 이들 8개 비유 중 특히 앞의 세 비유가 부정형으로서 한 세트라는 사실 속에서 방증한다.

(3) 가루 서 말 속의 누룩

아울러 신약성서에서는 언제나 누룩이 부정적 상징으로 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천국 비유라는(33절)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이 역시 긍정형의 많은 설교가 있었다.

설교에서 적은 양으로 많이 먹였다고 예찬할까. 아니면 완성된 떡(빵)을 예찬하는 설교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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