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신학

히브리어로 된 6가지 죄(罪)

성경 언어권에서 사용된 ‘죄’라는 말에 대한 쓰임새가 있다. 이걸 안다고 죄를 덜 짓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에 담긴 죄의 흔적을 통해서 죄에 대한 심리와 공동체의 반응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반응을 살펴볼 수는 있다. 위반 죄 아삼(אָשָׁם), 불의 죄 에베르(עֶוֶל), 악한 죄 라(רַע), 반역 죄 파솨(פָשַׁע), 벗어난 죄 하타(חָטָא) 순으로 여섯 개만 요약하겠다. 헬라어 권역에서의 죄 개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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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 전에는 정말로 1000살까지 살았는가?

노아의 홍수 이전 사람들은 정말로 1,000살까지 살았는가?─ 이 글은 기독교인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논하려는 목적에서 작성한 글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 기독교인을 무속과 미신이 과학을 대신하던 시대로 되돌려 보내 퇴행시킨 것은 역설적이게도 과학 자신일 것이다. 더러는 그 과학에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가령,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창 7:7)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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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무지개에 관한 도상해석

창세기 9장 무지개에 대한 오해 상징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의 단골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무지개(와 홍수)의 상징에 관한 질의이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다.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다시는 물로 멸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그 표식이 무지개라면서 어찌하여 여전히 홍수가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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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왜 악(惡)의 기원이 되었나?

뱀은 어쩌다 악의 기원이 되었나? 뱀 속에 사탄이 들어갔나? 사탄이 동물인 뱀을 사주하였는가? 아니면 그냥 생긴게 마음에 안들어서 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뱀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단어 세 가지가 있다. 창세기에서 처음 언급되는 나카쉬(נָחָשׁ) 그리고 ‘사라프’와 ‘탄닌’이다. 나카쉬가 파충류로서의 뱀을 통칭한다면(사 27:1; 렘 8:17; 미 7:17), 사라프(שָׂרָף)는 사나움이 강조된 뱀이다. ‘불뱀’ 또는 ‘날아다니는 불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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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를 남자 갈빗대로 지으셨는가?

창세기를 과학적으로 읽으려는 태도는 매우 악한 태도임을 강조한 바 있다. 창조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순한 동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하나님이 아담을 위하여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였을 때 이 의미를 해부학적으로 이해하는 것만큼 무지한 이해도 없는 것이다. 남성의 갈빗대 수가 여성보다 한 개 부족하다고 믿는 현대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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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는 왜 ‘하나님의 형상’됨을 가로막는가?

‘하나님 형상’이란 말을 ‘있는 모습 그대로…’ 혹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덕담처럼 많이 쓰는데 잘 알고 써야 한다. 호모. ‘호모’란 말은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등 모든 유형의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였으나, 요즘은 그런 식으로 잘 쓰지 않는다. 남성 동성애자는 ‘게이’, 여성 동성애자는 ‘레즈비언’이라 부른다. 이것은 서구에서 게이나 레즈비언 당사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유서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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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는 왜 마르둑(Μαρδοχαῖος)이 되었나

에스더서의 개요를 흔히 이렇게 요약을 한다. 1. 왕비가 되는 에스더(1-2장)2. 하만의 음모(3장)3. 하만의 죽음: 전복된 음모(4-8장)4. 부림의 축하(9-10장) 그러나 이는 핵심이 결여된 요약이다. 하만의 통쾌한 죽음만을 이야기 절정으로 보는데서 기인하는 오해이다. 대다수 독자의 기억에서도 그럴 것이다. 하만이 자기가 만든 사형 도구에 자기 목 매다는 것이 이야기 결말인 줄로. 하지만 그것은 9장의 내용을 회피하고 싶은 심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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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 (2)

올해 가장 이의를 받았던 주제에 관해 연휴기간 짬을 내어 잠시 부연하고자 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ㅡ”라 하신 적이 없다ㅡ 라는 주제이다. 이는 널리 일반화된 표현에 대한 꽤 자극적인 제목이었지만, 글의 논지는 ‘문자’와 ‘기호’ 간에 일어나는 해석의 문제였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문자는 변치 않지만 기호와 해석소는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진리가 변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해를 하는 해석자들의 해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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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장 23절, ‘해석자’인가 ‘중보자’인가.

욥기 33:23에 나오는 <해석자>라는 말이 개정판에서는 <중보자>로 바뀌었는데 어느것이 맞느냐는 질의에 대한 견해. 이 본문이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찐대” – 개역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 개역개정 여기서 <중보자>로 번역된 멜리쯔(מֵלִ֗יץ)는 ‘조롱하다’라는 동사 루쯔(לוּץ)의 히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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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된 총신대 사태, 사랑의 교회를 향한 집요한 공격, 동성애 합법화를 위해 평등으로 위장하고 들어오는 성(性) 관념들, 이념에 오염된 그릇된 토지 사상. 교회를 향한 이러한 도전들은 믿음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저 확신만큼이나 의심으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을 반영한다. 과연 한국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인가? (죽지도 않고 부활하겠단 소리로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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