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3:23에 나오는 <해석자>라는 말이 개정판에서는 <중보자>로 바뀌었는데 어느것이 맞느냐는 질의에 대한 견해.
이 본문이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찐대” – 개역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 개역개정
여기서 <중보자>로 번역된 멜리쯔(מֵלִ֗יץ)는 ‘조롱하다’라는 동사 루쯔(לוּץ)의 히필형 동사에서 비롯된 분사이다.
조롱을 하다가 어떻게 ‘중보자’라는 분사가 될 수 있었느냐,
그것은 그 조롱이 말을 더듬는 대상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동사 히필형의 특성상
‘말을 더듬다’에서 사역 능동형이 되니까
‘말을 더듬도록 시키다’ <—- 이 형식에서
“번역하다”, “통역하다”라는 뜻으로 변모하였다.
개역성경의 욥기에서
<해석자>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33장, 즉 거의 종장이 임박한 가운데
욥을 정죄하는 엘리후의 다이얼로그의 한 대목이다.
욥이 자기 고통에 대하여 죄가 없음을,
까닭없음을 변증하자,
새파랗게 젊은 엘리후가
“어르신 그게 아니고요 ㅡ”하면서
논증을 하는 대목이다.
엘리후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질병을 보내서 잘못을 고치시며,
고통을 주셔서도 잘못을 고치시기에
죄가 없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죽으라는 거.
그래서 그렇게
무덤의 문턱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
일천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도움을 줄 것이라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천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바로 ‘통역’이다.
‘말을 더듬도록 시키다’라는 히필형의 본성을 기억할 것이다.
말을 잘 하면 통역을 해줄 수가 없는 법이다.
이것은 결국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도 맞물리는데
메시야의 인간과 결부된 궁극적 사역이
바로 ‘통역’이라는 사실을 공지한다.
그런 점에서 <중보자>라는 최종적인 어휘가 등장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욥 33:23의 <통변자>를 <중보자>라고 명시한 것은 다소 지나친 것이다.
<통변자>로 해놓으면 무지한 독자들이 영원히 <중보자>로서의 그 진정한 의미를 알아채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번역자의 조바심이 작용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