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첫《매일묵상》이다. 앞으로 매일은 못 올리더라도 지속을 하고자 한다. 업(業)이 글 다루는 일인데 매일 글로 내자니 이런 고통이 없다. 자꾸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글로 내야 묵상인데 글에 생각을 입히는 짓을… 올해는 예서 벗어나는 단련을 하려 한다. 참고로 구독자님들에게 드릴 말씀은 이번에 블로그 구조에 조금 손을 대어 이 매일의 묵상이 전체 포럼(게시판) 중에서 《매일묵상》포럼과 물리도록 조처 하였다. 페이스북 계정으로 손쉽게 login 되오니 함께 묵상을 남겨주시면 감사! (그러나 요즘 기술이 자꾸자꾸 바뀌어 제대로 작동할 지…)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기를ㅡ
매일묵상/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본문: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ㅡ이사야 54:1-8
관찰:
1.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다 (1절)
2. 잠시 너를 버렸다 (7절)… 잠시 가렸다 (8절)
묵상:
3. 생산이 불능한 과부가 어떻게 남편 있는 자보다 자식이 많을 수 있는 지를 묵상함.
느낀점:
4. 나의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리다. 우리는 대부분 ‘지금도 어렵지만…’이라는 단서를 항상 달고 살지만, 믿는 자의 진정한 어려움은 하늘 문이 닫힌 것만 같았던 경험의 때일 것이다. 실로 그것은 (신께서) 일부러 빠뜨리는 도탄인고,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원인의 결과였던고…
해설:
5. 이 본문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인고의 세월에 대한 해명을 담은 글이다. 전쟁의 신 여호와를 섬겼는데 이리도 처참하게 무너지다니. 토라의 편찬 시기는 바벨론 포로기를 기점으로, 이미 기구한 삶을 살았던 자신들의 조상의 탈출기(애굽)를 통해 후예들의 희망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70년이라는 시간은 공짜가 아니었다. 훌쩍 넘어온 게 아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돌아오는 그들에게는 큰 후유증이 있었다. 그들에게 잉태치 못하고 출산하지 못하는 큰 후유증을 남겼다. 거기다가 남편(남자)까지 없다는 사실은 생산 자원의 완벽한 상실을 의미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었을까? 네 남편이 바로 창조주다ㅡ라는 말로 하나님은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결단과 적용:
6. 어제 30여년 전에 나에게 세례를 주셨던 첫 목사님 내외분과 식사를 하면서 그 30년 전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분을 떠나 온 후 당시의 아무개가 지금의 아무개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아무개와 아무개가 결혼하였다는 이야기. 듣고 있노라니 그때에 곧 떠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이제 80세 되신 목사님 주변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30년 전과 후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어떠 어떠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인데… 이내 나는 거부하고 현재를 택하였다. 현재의 내게 들어 찬 정신이 사라지고 바뀐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비록 사람들 앞에서 헤겔(Hegel)의 신학을 호되게 비판은 하지만 시간이 곧 하나님이라 함은 지당한 이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에서 나의 자식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잠시라도 가리는 것을 두려워하자. (현대인은 ‘두려움’을 미신으로 여기지…)
기도:
7. 나―하나님의 얼굴을 잠시라도 가리지 마소서
너―부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우리―우리를 항상 지켜보시옵소서
그림묵상:
cf. Lectionary, Monday (January 18, 2016): Psalm 145; Isaiah 54:1-8; Romans 12: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