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속 사무엘

4·15총선 속 사무엘

우리나라 정치 담론을 남의 나라 고대사로 빗대어 미안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 신화가 동서양을 초월한 만인(滿人)의 배설 문학이 되었듯이, 만민(萬民)의 역사 복고를 반영하는 경전의 지위를 획득하였기에 예시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경전에서 ‘민’(民)의 집합인 ‘국가’의 시작은 사무엘이라는 사제 겸 선지자에 의해 도입되었다. 사무엘을 가리켜 사제 겸 선지자라 말하는 것은 사무엘 이전 시대의 사제와는 지위가 약간 달랐으면서도 왕정 이후에 등장하는 선지자 군으로 분류하기에도 모호한 지위였기 때문이다.

사사 시대의 판관이었던 깡패들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성별 되었다는 점에서는 사제요, 왕정 시대의 선지자와는 달리 군사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군장의 지위였던 것이 바로 사무엘이다.

그런 그의 지도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이스라엘 왕정의 출발이다. 정경은 승자의 서사이기 때문에 사무엘을 당대 최고의 선지자로 묘사하지만, 사무엘이 이끄는 지파 동맹은 전쟁에서 결코 효과적이지 못했다. 가장 큰 적성 국가였던 블레셋이 상비군을 전개했던 것에 반해 사무엘이 관할했던 지파 동맹은 언제나 예비군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예비군 데리고 무슨 전쟁을 하나.

이쪽 국경의 지파가 적성국에 삥을 뜯기고 있을 때 저쪽 국경에 위치한 지파에 파발을 보내면 밍기적거리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늦게 도착하기 일쑤였다. 어쩌면 상황이 종료돼 있기를 바라고서 늦게 출발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도 예비군이 아닌 상비군이 필요했다.

이스라엘의 민의(民意)가 왕을 뽑자고 제안했을 때 사무엘이 볼멘소리로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며 고지했던 징세·징발·징병의 제도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통용되는 국가로서 면모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도입된 행정 시스템에서 과연 누가 군사적 리더를 맡을 것인가 하는 선출권의 몫은 사무엘에게 있었다.

사실 정경은 사울을 기괴한 인물로 묘사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사무엘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제도라 하여 아무나 뽑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고르는데 꽤 공을 들였다. 그가 사울을 처음 낙점했을 때 사울은 겸손한 자였다.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어깨에 올 정도로 눈에 띄는 인물이었지만 사울은 나서지 않고 숨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렇게 뽑힌 사울은 전쟁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그는 실각하게 된다. 그가 실각한 가장 큰 이유는 사무엘과의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 유명한 테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

사무엘상 15장 22절

이 유명한 명제는 사울과 사무엘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사울의 변명을 좀 대신에 하고 싶다.

당시에 전쟁을 하려면 제사 곧 예배를 드리고서 전쟁에 나가도록 되어 있는데 도대체가 예배 장소에 사무엘이라는 인간이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다. 전쟁 예배를 집전하려면 일찍 일찍 와야 할 것이 아닌가. 사무엘은 무려 7일을 늦게 나타났다.

사울은 몸이 달았다. 그는 전사가 아니었던가? 전투에는 적시/적기가 있는 법이다. 타이밍을 놓쳐서는 승리를 보장할 수가 없다. 특히 이 군대의 성분이란 것이 앞서 말한 대로 소수의 상비군과 다수의 예비군으로 구성되었는데 무려 7일을 아무런 조처를 안 한다면 병력의 사기 문제는 고사하고 뿔뿔이 흩어질 위험이 있었다. 지금 출격해야 승률이 높았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이 예배를 집전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현대적 의미의 ‘왕’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사무엘처럼 제의를 겸할 수 있는 나기드(דגִינָ)였기 때문에 승자의 서사가 묘사한 것처럼 그렇게 위법한 것도 아니었다. 예배 집례자가 무려 7일을 늦게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내 입을 타고 나오는 사울 변명에 편승하여서는 안 된다.
“순종은 제사보다 우월하며” 그것이 명백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의의 목적은 대개 전쟁에서의 승리이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그 전쟁에서의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이 같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좌절로 깊은 실의에 빠졌던 것 같다. 본래 왕의 제도를 반대했던 것을 상기하면 ‘아이고, 잘 됐네. 내가 뭐라더냐.’ 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깊은 실의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계시한다.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무엘상 16장 1절

자신이 뽑은 인물 사울의 실패로 사무엘이 깊은 낙망에 빠진 것과, 한 번의 직접 선거로 인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 처한 깊은 낙망은 일반이다.

하나님의 언명을 받은 사무엘은 뿔에 기름을 채워서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러고는 결국 다윗을 찾아낸다. 이 선출 행위는 공적인 행위 같지만,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은밀한 자기만의 영적 행위였다는 점에서, 우리가 개인으로 치를 수 있는 마지막 선거일 지 모르는 총선을 코앞에 둔 절체절명의 우리 상황과 역시 일반이다.

유권자 대부분의 실망은 기권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기독교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 뿔에 기름을 예비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실과 신망을 담아 그 인물을 꿰뚫어 보고 통찰하여, 그 머리에 기름을 붓듯이 희망을 담아 부어야 한다.

이 나라의 국운이 걸려 있다.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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