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과 요셉 톨레도트(Toledot/ תּוֹלְדֹת)

예수 부활과 요셉 톨레도트(Toledot/ תּוֹלְדֹת)

 
이 글은 예수의 부활 이미지가 지나친 군주상(像)으로 편중된 이해를 바로잡고자 작성한 글이다.

예수의 파스카는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강력한 군주의 귀환 정도로 변질된 일면이 있다. 군주로서 예수상에 매집된 나머지 교회가 그동안 수천 년간 무시하고 들여다보지 못했던 다음 상징들을 복원해냄으로써 참된 파스카 예수상을 제시할 것이다.

우선 다음 표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여섯 가지로 간추린 창세기 요셉과 예수 상 간의 유비이다.

예수의 요셉 타이폴로지

 

표 해설은 다음과 같다.

(1)항:  유다가 헤게모니를 쥐게 된 경위에 대하여

르우벤은 어려서부터 독특한데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합환채 같은 것이나 이고 다니더니 장성하여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버지의 아내와 통간을 한 것이다. 합환채는 그 뿌리 모양이 남녀가 엉켜 있는 듯한 모양인데다가 그 열매에는 최음에 탁효가 있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야곱이 즉시로 그를 왜 제거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이미 성경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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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구덩이에 매장해버리려고 주동한 형이 누구인지 불분명하지만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 즉 종의 아들들의 원한이 컸을 가능성이 있다. 요셉이 아버지에게 고해바친 형들은 주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창 37:2). 그렇지만 그를 매장시키는 일에 종의 아들들만이 아닌 나머지 형들도 말리지 않고 있다. 가담하였다는 소리다.

오로지 르우벤 만이 옷을 찢어가며 그를 구해내려 애썼다(창 37:29). 그럼에도 그는 형제들에게 별 영향력이 없었던 것 같다. (장자임에도.) 문제는 성경조차도 그의 그런 노력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째서일까?

한 7-8년 전쯤에 과거 섬기던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인도하면서 어린이들과 이집트 왕자 II 속편을 본 일이 있다. I편은 모세 이야기이지만, II편은 요셉 이야기이다. 영화가 시작되자 검정 배경에 흰 글씨로 자막이 지나갔다.

“여러분이 보게 될 이 영화는 창세기 요셉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가 예술적이고도 역사적 인준을 갖추는 한편…그 원작의 본질과 가치의 보전에 충실했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이걸 읽으면서 ‘무슨 만화 영화가 거창하기는… 후딱 시작할 것이지..’ 하면서 코웃음 치며 기다렸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요셉의 출생 장면, 성장, 꿈, 형들과의 갈등…, 구덩이에 요셉을 매장하는 과정에 이르러서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요셉을 팔아버리기까지 하는 악역을 누가 주도하는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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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유다였다.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의자에서 떼고는 ‘어쭈~ 이것봐라?’ 하는 탄성이 입에서 새나왔다. 르우벤의 목소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아예 등장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만화영화가 스스로 “…자부하는 바이다”라고 할 만 했다. 이 영화는 분명 각색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성경의 저작/편집의 구도를 잘 따라 스토리를 축소(reduced)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프레임을 우리가 정경화 과정(canonization)이라고 부른다. 정경화 과정은 성경 66권을 골라내는 권위 있는 회의에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저작 단계부터 편찬 단계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사실 본 글은 사순절 시리즈를 요약한 것인데, 이번 사순절 창세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총 40회분 중 적어도 4분의 1정도는 요셉에게 할애해주어야 요셉에게 경의를 표한 바 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처음부터 먹었었다. 왜냐하면, 르우벤도 그 정경화라는 과정 속에서 사라진 이름이 되었지만,

갖은 고생과 수고, 배신과 억울함, 그리고 용서.
즉, 그리스도의 수난 전 과정을 온 몸으로 보여준 요셉 역시 정경화에 의해 사라진 이름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헤게모니를 (다윗의 조상) 유다가 가져가고 있다.

정경화 과정에서 은폐되고 말았지만, 요셉 이야기는 이미 창세기가 품고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고하는 중차대한 서막이라 할 수 있다.

(2)항: 아버지 이름은 야곱

4복음서 중 마태복음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시작을 고한다. 신약만 따로 떼어 아무생각 없이 읽으면 어색한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아브라함과 다윗의ㅡ’라는 세트는 다소 어색한 쌍이다. 마태복음의 첫 절에 나오는 이 《계보》는 창세기의 마지막 《톨레도트》(계보)였던 야곱의 《톨레도트》 다음 톨레도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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