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5/40) 사탄의 시험과 성령의 시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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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5/40) 사탄의 시험과 성령의 시험 차이

 
 
* 이 글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의 동인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매일묵상/ 2016년 2월 15일 월요일

 
본문: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9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내어 놓으리니 그 중에서 하나를 네가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11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12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
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15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내셨더니 천사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그 때에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16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17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ㅡ역대상 21:1-17.

 
관찰:

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1절)
2.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13절)

 
묵상:

3. 시험에 응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하여 묵상.

 
느낀점:

4. 상기 본문은 사무엘하 24장에서도 나오는 다윗이 시험당하는 이야기인데 왜 여기서는 사탄이 충동(סוּת)했다고 하는가? 앞서 사무엘하에서는 하나님이 격동(סוּת)했다고 했으면서? 시험은 어디서 오는가?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ㅡ사무엘하 24:1

 
해설:

5. 구약학의 거장 폰 라트(G. von Rad)가 실로 위대한 거장이 되기까지는 매우 중대한 발견 하나에서 비롯된다. 성경을 읽다가 의미심장한 대목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홍해 바다를 가르는 장면도 아니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구절도 아니고 그저 다음의 평범한 구절들이었다.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ㅡ신명기 26:1-11

특별히 5b절부터 9절에 주목하였다. 그는 이 구절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당시, 수고하고 땀 흘려 거둔 농작물의 최초의 열매들을 바구니에 담아 하나님의 제단 앞에 드리면 제사장은 바로 이 본문(신 26:5b-9)을 낭독했는데, 평범해 보이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중대한 과정, 1) 족장들의 세상살이 2) 출애굽 사건 3) 가나안 땅 정착 이야기가 정확하게 요약되어 있는 신조(Doctrine)라는 것이다.

이 짧은 신조의 발견은 위대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 신조의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 땅에 관한 이야기다. 땅은 어느 땅인가? 가나안 땅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곳에 살게 되었는가?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창 12:1-6).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본토인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여정한 끝에 세겜이라는 지역의 모레 상수리나무에 거처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 후손은 오랜 기근이 깃들자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억압이 깃들자 탈출을 통해 조상이 살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다시 귀환한다. 이 과정에서 구속사로 불리는 일단의 민족 서사시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니까 구속사는 필연적으로 ‘땅의 약속’을 바닥에 깔고 있다. 그리고 그 ‘약속’과 그것의 ‘성취’는 구약성서의 키 워드다.

자 여기서 폰 라트의 빛나는 업적이 발현을 하는 것이다.

그가 발현시킨 도식에 입각하면 창세기에서 여호수아서까지는 ‘땅 없는 자들이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다시 여호수아에서 시작하여 열왕기서까지는 ‘땅을 차지했던 자들이 재차 땅을 잃어 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구속사의 기본 골격이다. 자기 땅이 없어 남의 땅을 떠돌아다니던 자들에게 땅의 약속이 주어졌고 실제 땅을 주셨지만 그 땅에서 제대로 살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셨던 땅을 다시 거두어 가셨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약속’과 ‘성취’라는 무한한 감격도 있지만 ‘바벨론 포로기’라고 하는 하나님의 심판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폰 라트가 제시한 대로 읽을 때 중대한 기점을 발견하는데 바로 ‘땅을 차지하는 이야기’와 ‘땅을 잃어버리는 이야기’ 중간에 낀 책 여호수아서의 기능이다. 폰 라트는 이를 근거로 혁명적인 학명을 하나 언급하는데 바로 육경(Hexateuch)이라는 용어다. 여섯 두루마리라는 뜻. 그 동안은 다섯 두루마리 즉, 유대인의 토라로서 오경(Pentateuch)에만 매립되어 왔는데, 이 오경의 프로토타입 육경의 존재를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서, 왜, 육경이던 것이 오경이 되었느냐?

그것은 바로 ‘바벨론 포로기 공동체’에 의한 정경화 작업에서 사마리아 전승에 해당하는 일체의 본문 계열은 축소되거나 제거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저 짧은 역사 신조 중에 가장 중요한 전승인 ‘시내산 전승(모세가 하나님 만난)’이 제거된 이유이기도 하며, 바로 오늘의 본문, 즉, 다윗의 인구조사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같은 이야기임에도 이 큰 시험의 줄기를 누가 주도했는지 ㅡ하나님인지 사탄인지ㅡ 그 원인 부분의 진술을 달리하는 전거가 된다.

자고로 제2성전 재건 공동체에 의해 부활한 것이 다윗의 성전신학이었다면, 땅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성전이 어떻게 붕괴되었는지)에 주력하는 텍스트의 힘은 보다 다윗에 대하여 냉엄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다는 차이다. 이를 두고 구약학자들은 역대기 사가(열왕기 이후를 만진 손)와 신명기 사가(열왕기 이하를 만진 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신명기 사가는 위 역대기 사가의 13절 진술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구하노라”를 보다 신랄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구하노라” (신명기 사가)

재앙은 세 가지 중 하나, 곧 (1) 기근 (2) 대적에게 쫓김 (3) 전염병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세 가지 재앙 중 1번이면 1번이고 2번이면 2번이지,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다윗은 ‘우리’라는 용어로 슬쩍 넘어가고 있다. 사실 1, 2, 3번 중 자기 개인이 고생하는 것은 오로지 2번 재앙뿐이다. 어떤 고생인가? 사울에게 쫓겨 다니던 인생, 아들에게 쫓겨 다니던 인생.., 그의 젊은 나날은 남에게 쫓겨 다니는 일로 세월을 다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X고생을 또 하라구?

차마 백성이 직격탄을 맞을 1번이나 3번이라고 직접 고르지는 못하고.., “…손에 빠지고 …손에 빠지지 않기를 구한다”는 이상한 문장, 즉 2번만은 제외시키는 교활한 문장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험 당하는 주체를 ‘내가’에서 ‘우리’로 바꾼 것이다.

신명기에 보전된 교활함이 드러나는 문장에 비하면 역대기 위 본문의 문장은 보다 정직하다. (왜 성전 신앙, 예배 신앙의 롤 모델이기 때문에. 역대기 사가에게.)

게다가 역대기 사가의 정경에서 이 예배의 창시자 다윗은 하나님이 시험하지 않는다.
그는 (까닭없이?) 사탄의 괴롭힘을 받은 자다. (마치 욥 처럼?)

하지만 육경을 가르고 지나가 ‘땅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에 대한 증언에 충실한 신명기 사가는 다윗이라고 예외 아니며, 특히 우리 하나님께서는 호된 시험도 불사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신약성서 공관복음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성령에 이끌리어(혹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Luke) 사탄의 시험을 받았다는 진술의 전거가 되었다.

 
결단과 적용:

6. 내가 받을 시험은 내가!

 
기도:

7. 나― 내가 받을 시험을 내가 받는 담력을 주소서.
너― 자신이 받을 시험에 당당해지게 하소서.
우리―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소서.

※ 2차 세계대전의 여진으로 독일의 신학에서는 ‘반(反) 구약성서’의 정서가 팽배해 있었으나 ㅡ왜, 안티 세미티즘 때문에ㅡ 구약성서의 이 같은 본질적인 영역으로 궤도를 바꾼 것은 바로 이 폰 라트의 공적이다.

 

cf. Lectionary, Monday (February 15, 2016): Psalm 17; 1 Chronicles 21:1-17; 1 John 2:1-6.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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