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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시험에서 속히 빠져나오는 방법을 담고 있다.

 

매일묵상/ 2016년 2월 17일 수요일

 
본문: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ㅡ욥기 1:6-12.

 
관찰:

1.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5절)
2.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0절)

 
묵상:

3. 해도 해도 안 될 때를 묵상함.

 
느낀점:

4. 이신론(Deism)의 침공은 하나님을 자연신으로 전락시켰다. 그 뒤로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탄이 사사로운 일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신론: 神이 세상을 창조하기는 하였으나, 창조한 뒤 저 세상 밖으로 멀리 물러나 있고 세상은 저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법칙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는 신론. 데카르트 이후에 급 발전되었다.

 
해설:

5. 창세기보다도 앞선 본문으로 알려진 이 욥기 본문은 유대교 경전으로서 토라를 이해함에 있어서나, 또 그것을 석의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집적해 내려오신 이야기를 담은 신약성서 도입부를 이해함에 있어서나 대단히 중요한 본문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본문만 선호하는 현대 신학의 트랜드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신화로 규정해 일단의 담론으로 박제해 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 신화적 담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가장 큰 신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은 그 곁에 섰고 그 중에는 사탄도 섞여 있다. 하나님이 사탄과 대화를 한다는 자체도 이상하지만, 그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섞여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것은 우리가 시험에 당할 때에 느끼는 자연스러운 혼재임에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이신론으로 밀어내려하거나 선악(善惡)의 도식적 이원론으로 밀어내버린다.

그러나 세상없어 무슨 무슨 신학 박박사에, 무슨 무슨 영험한 목사에… 그 할아버지라도 자신의 시험에 부쳐서는 이 선과 악의 혼재를 도무지 가를 길이 없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시험하는가? 사탄이 시험을 하는가?
시험하는 자는 사탄이요,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신 분인 것이다.

이것은 미개한 이해가 아니라, 처음 이해였던 동시에 최신의 이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결한 칭호가 가당치 않게도, 더러운 악령들이 먼저 알아보는 것으로 전개되고 있는, 알 수 없는 초대교회의 복음서 전승을 이해하는 전거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악령들린 사람이)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ㅡ 마가복음 5:7; cf. 3:11.

 
결단과 적용:

6. 인간의 삶 가운데 당하는 시험 중에는 간헐적인 (이신론적) 불상사도 있고, 장기전으로 접어든 시험(의 기간)도 반드시 있다. 그것은 뛰어 넘거나 약(略)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만히 당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것을 단지 하나님의 시험이 아닌 재수없는 이신론적/우발적 사고(accident)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은 그 시험의 기간 중에 우리가 발설하고 마는 말들이다. 그 때에 내뱉었던 말들이 그 시험을 저속한 것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욥은 무수한 말을 내뱉었음에도 균일한 한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시험 주신 자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리하여 나오는 탄성이 바로 이 말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ㅡ욥기 42:5.

시험에서 어떻게 속히 빠져나올 수 있느냐?

그것은 ‘까닭 없이’를 속히 입증해내는 방법 외엔 도리가 없다.

사탄은,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9절)

ㅡ라고 하나님을 충동하였다.

게다가 ‘까닭 없이’ (능히) 시험을 당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주권’이 이 욥기의 주제이자 그 모든 시험의 주제인 까닭이다.

희랍어 셉투아진트에서 δωρεάν으로 번역하고 있는 이 ‘까닭 없이’(חִנָּם)는 희랍어로 보나 히브리어로 보나 그 뜻이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셨던 모든 소유물 곧, 물질, 토지, 아내, 아들, 딸… 가족 모두 선물과 같은 것이지만, 그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 역시, 그것은 마치 ‘선물’처럼 불현듯 찾아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엇이든 가능한 존재이시기 때문에.

시험을 ‘선물’로 인정할 때 우리는 보다 속히 빠져나올 수 있다.

단, 그 선물이 빠져나오기 위한 조건이 된다면 이미 그것은 선물이 아닐 텐데.

‘선물’을 기억할 지어다.
선물도 주장하는가? 내놓으라고?

 
기도:

7. 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cf. Lectionary, Wednesday (February 17, 2016): Psalm 17; Job 1:1-22; Luke 21:34-22:6.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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