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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리바 샘.

어떤 목회자가 만일 <므리바> 사건을 ‘모세’같은 자신을 향해 불순종하는 장로들을 길들이려는 예화로 썼다면 그건 넌센스일 수 있다. 므리바 사건은 도리어 모세가 징계 받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 사건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므리바 사건을 인용할 때 이처럼 혼동하는 것은 출애굽기 본문에서는 장로들의 불평이 부각되지만, 민수기 본문에서는 모세와 아론의 불평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애굽기 본문은 보다 선대의 것임이 분명하지만(J), 모세와 아론의 언동을 다시 복원해낸 포로기 시대 편저의 민수기 본문도 유서 깊은 본문이다(P). 이처럼 시험(맛사, מַסָּה)과 불평(므리바, מַסָּה)은 물의 문제로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마디로. 너희가 광야로 우리를 끌고 나왔으니 어서 물을 내놓으라는 것이고, 하나님이 시켜서 그런 것인데 왜 나더러 난리를 치느냐─인 것이다.

므리바

시대를 훌쩍 넘어.

사람들 몰래 물 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 여성에게 주님이 물을 달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물을 달라고 하던 <맛사>와 <므리바>에서와는 달리 이번엔 하나님이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찾아오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달라는 물은 안 드리고, 사마리아 이데올로기로 시작하여… 생수(生水)… 등 형이상학적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한마디로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다. 므리바.

오늘날 우리의 불평이 형이상학적 신앙으로 우회하는 것처럼…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일침을 가하신다.

“너의 남자를 데리고 오라!”

그렇다. 한글 본문에서의 ‘남편’으로 옮긴 아네르(ἀνήρ)는 남편보다는 ‘남자’가 강조된 낱말이다. 여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남자가 없습니다.”

고대의 여성에게 남자가 없다는 사실은 평범한 삶으로부터의 멀어진 처지를 드러낸다. 그런 여성에게 예수께서 이렇게 말하신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리더쉽이라는 용어 자체를 혐오하는 편이다. 이런 습성은 현대 목회자로서의 덕목이 아니지만, 적어도 참된 프로스쿠네오(예배)인지 거짓 프로스쿠네오(예배)인지 그것 하나만큼은 명확하게 골라낼 수 있다. 이것이 므리바/불평의 원인을 제공할는지는 모르겠다.

성서일과, 출 17:1-7; 참고 본문, 시편 95; 롬 5:1-11; 요 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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