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믿음


  

거꾸로 믿음

‘제사’를 문맥 속에 놓고서 설명하는 이 유명한 믿음의 구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히브리서의 믿음을 토대로 부정적 예시의 제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겠다.

(1) 욥의 제사: 유비무환, 확실히 해두자.

욥은 자녀들을 위해 (또는 자녀들로 하여금) 빈번하게 제사를 드리게 했다. 자녀들이 파티를 끝내고 돌아오면 차례대로 그들을 불러다가 깨끗함 받도록 제사를 드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들 명수대로 (한 제물로 한 번에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하였다.

(2) 사울의 제사: 빨리빨리, 또는 책임소재 미상.

사울이 권력에서 밀려나게 되는 단초는 사무엘과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무엘과의 갈등은 한 제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사울은 급한 전투를 앞두고 있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싸우러 나가야 했다. 그런데 제사를 집례 해야 할 사무엘이 약속한 날짜에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친나머지 사울은 단독으로 제사를 감행했다. 사울의 불법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항변한다면 그는 명시적 ‘왕’이라기 보다 사사의 한 사람으로서 제사 집례가 아예 불가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순종하지 않았다’는 명시적 과오 외에도 총체적 책임소재의 미상인 제사였다. (왕의 제도가 도래하기까지는 사무엘의 자식관리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3) 엘리의 제사: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

엘리의 아들들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오면 태워서 제사 드릴(번제) 고기를 미처 태우기도 전에 날것으로 강탈해 가곤 했다.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려도 강제로 가져간 것이다. 이때 엘리 제사장은 귀가 잘 들리지를 않았다고 성서는 기록한다.

(4) 가인의 제사: 반 믿음(Anti-faith)의 제사.

가인과 그의 제사는 ‘실패한 예배’의 모든 예배의 표상이다. 제사 직후의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어 자인과 아벨의 제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두 개의 목소리가 등장할 뿐이다. 가인의 마음과 판단력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목소리, 그리고 하나님의 판단하심 속에서 등장하는 아벨의 목소리. 여기서 믿음의 제사와 반(反) 믿음의 제사로 갈리는 것이다.

(5) 히브리서에서 제시하는 믿음의 제사.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의 제사는 위 네 가지 제사들이 아닌 것을 말한다. 특히 저 유명한 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바라는 것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자동차? 집? 명예? 각종 환경과 사물의 물리적 형체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실상”(휘포스타시스)은 바라는 그것들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문장이다. OK?

. 실상 ≠ 바라는 것
. 실상 = 믿음

(* 실상/휘포타시스는 1:3 그 본체의 형상이라는 말에서 “본체”와 같은 말이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파괴하고 공백으로 비워버린다. 믿음은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자동차나 명예가 과정이고 본질이 믿음이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백인 셈이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벨의 소리 없는 목소리의 원리인 것이다. 그래야 천국이제.

* 2013.8.11일자 설교, 믿음과 반(反) 믿음 | 히 11:1-3, 8-16. (c.f. 사 1:1, 10-20; 시 50:1-8, 22-23; 눅 12:32-40.) 50:1-8, 22-23; 눅 12: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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