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초대교회의 처음 균열과 그 균열을 가르고 지나간 성령 자신의 길, 그리고 그 모든 궤적 중심선상에서 시그널로 작용하는 ‘방언’ 또는 ‘바람’의 텔로(θέλωㅡ임의로)를 정리한 글이다.
따라서 이글은 앞서 작성했던
파라클레토스는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나와
노우호 목사의 악령 방언(γλώσση)설은 다 옳은가?
그리고 성경의 괴물 ‘리워야단’과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연장선상에 있다.
(1) 초대교회의 분열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화급한 문제는 주의 재림이 지연되는 사태라고 일러두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추정에서 했던 말이 아니라 꽤나 정교하게 소개할 수 있다. 누가(Luke)가 사도행전에서 그것을 집요하게 다뤄 놓은 덕택이다.
지금부터 ‘재림의 지연’이 가져온 결과를 세 가지 정도로 제시할 것인데, 우선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전제를 털어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에는 초대교회였으니(왜, 오늘날 너도나도 초대교회 초대교회…하고 노래를 부르니까) 모두 하나 같이 똘똘 뭉쳐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이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종의 이반 현상이었다.
(2) 헬라파와 히브리파 사이의 균열
초대교회 당시에는 대부분 사유 재산을 팔아 공동생활을 통해서 평등을 구현한 듯 보인다. 두 번씩이나 소개되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42-44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28-32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했는지 모르지만 헬라파 유대인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자기네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누락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cf. 행 6:1)
이 작은 파열음이 기록된 곳에 등장하는 ‘헬라파’는 ‘히브리파’라는 낱말과 더불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누가가 소개하는 이 불가사의한 그룹의 원어 명칭은 헬레니스테스(‘Eλληνιστής)인데 그 뜻은 우선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그렇지만 당대 팔레스타인 지역은 강력한 헬라화의 영향으로 성전과 회당에서 사용하는 예전용(liturgy) 언어를 제외하고는 히브리어 사용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으므로 이같이 언어로 인종의 경계를 긋는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따라서 이들의 명칭에 대한 다음 주석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음 인용은 나의 과거 논문 중 이 명칭 ‘헬레니스테스’에 대한 주석 부분이다. (약간 어려워도 정독하는 것이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확신하지만, 정 깝갑한 분은 건너 띄어도 좋다)
여기서 언급된 이들 명칭 ‘헬레니스테스’와 그 대칭이 되는 히브리파 명칭 ‘헤브라이오스’(‘Eβραίος)는 민족 내지는 종교적 구별이지 사용하는 언어군으로서 구별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것은 유대 디아스포라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역시 필로(Philo: 디아스포라 유대인 철학자)를 ‘헤브라이오스’라고 부른 일이 있다.
그런데 이 ‘헬레니스테스’라는 낱말은 동사 헬레니제인(‘Eλληνίζειν)에서 만들어진 낱말임을 감안하면 대칭어인 히브리파는 동사 헤브라이제인(‘Eβραίζειν)에서 온 말이라야 대칭이 맞는 것이었다(cf. Josephus, Jew, War, 6, 2, 1.). 왜냐하면 그래야 ‘히브리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랬다면 헤브라이스타이(‘Eβραϊσταί)라고 했어야 했다. [근데 성경에는 헤브라이오스/오이(‘Eβραίος, 복수)로 쓰임.] 그런 점에서 볼 때, 누가가 히브리파의 명칭으로 선택한 헤브라이오이는 헬레니스테스(타이)가 아닌 헬레네스(‘Eλληνες)의 대칭인 셈이다. (헬레네스는 완전 이교도 명칭) ‘헬레네스’는 단순히 언어만 헬라인이 아니라 명실상부 문화·종교적 헬라인이기에 그것을 대칭했다면 여기서 히브리파로 채택된 명칭 ‘헤브라이오이’ 역시 그같이 문화·종교적 히브리인을 말하기 때문이다. (언어만 히브리인이 아니라)
한편, 마카베오후서는 헬레니스모스(‘Eλληνισμόςㅡ헬레네스에서 온 말)를 당시 예루살렘에 퍼져있는 희랍의 가르침 즉 이교도 양식을 따르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헬레니스모스’는 점차 종교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4세기 경 다신교의 복고(復古)를 주창하여 배교자라는 별칭을 얻은 율리아누스(Julian, 331-363)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스로 자신과 같은 사람을 가리켜 헬레니스타이(‘Eλληνισται)라고 불렀으며 이 종교에 따르면 헬레니스테스(‘Eλληνιστής)는 이교도라는 의미였다.
이 인용문의 요약은 이런 것이다.
누가가 여기서 기록한 히브리파는 그 명칭 자체로서 이미 뼛속까지 히브리인이요,
반면 헬라파 명칭은 원뜻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지만 사용 용례로 볼 때는 ‘이교도’ 취급 받는 이단아였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히브리파는 이스라엘 영토 거주자요 헬라파만 외국 거주 디아스포라였던 것이 아니라, 히브리파나 헬라파나 둘 모두 디아스포라였다는 사실이다. (바울 자신은 디아스포라였으면서도 “자신은 뼛속까지 히브리인/유대인”이라고 했던 점을 상기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우리 극우, 극좌 교포처럼)
이 같은 사실은 스데반의 죽음을 가운데 두고서 적지 않은 넌센스로 작용한다.
아래서 설명할 것이다.
어쨌든 이 양자 간의 균열과 분쟁은 고작 ‘먹는 문제’로 야기 된 셈이다. 사실 먹는 게 다지
(3)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공용재산 사유화
그동안 교회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왔는데, 자기 재산 자기가 팔아서 마음 바뀐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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