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고 했지만, ‘붉은 빛 아름다운’(삼상 16:12) 다윗을 (외모로) 선택하시는 모순된 장면에 관해 풀어 놓은 글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은 사무엘이 사울을 대신할 ‘새 왕’을 캐스팅하러 갔을 때에 나온다.
사실 사무엘은 첫 눈에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을 낙점했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 삼상 16:6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만류하며 말씀하셨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삼상 16:7
그 유명한 말,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 이새가 아예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들 다윗이 나타나자 이렇게 묘사된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 삼상 16:12
이거 어찌된 일인가? 외모를 보고 계시지 않으신가?
빛이 붉다는 표현을 역본들은 이렇게 번역들을 하고 있다.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 공동번역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 새번역
그는 혈색이 좋고 눈에는 총기가 넘쳐 흐르는 잘 생긴 소년이었다. -현대인의 성경
대부분 외형적인 용모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붉다는 말 아드모니(אַדְמוֹנִ֔י/ad-mo-nee)는 아담(אָדָם)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아담은 붉은 흙을 뜻하는 아다마에서 비롯된 말이다.
한마디로 적토로 사람을 지으사ㅡ인 셈이다.
붉은 흙 아다마(אדמה)가 ‘형체 없는’(formless) 흙이라면, 아담은 붉게 된 형상(form)인 셈이다. [‘담’은 혈액을 말한다]
(참고로 다이아몬드의 어원인 아다마스(ἀδάμας: 길들일 수 없는)가 다마스(δάμας: 길들여진)에서 유래되는 과정은 헬라어 빠롤과 같은 시니피앙을 지녔음을 시사한다. 상기 일러스트레이션 참조)
하나님께선 사람을 세우실 때, 첫 사람 아담을 추인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야곱의 형 에서는 날 때부터 바로 아드모니(창 25:25)였지만 그는 그저 겉 사람인지라, 배고플 때 야곱에게 그 아드모니 권리를 팔아먹으며 이렇게 외친다.
“야! 그 붉은 것(죽/ הָאָדֹם֙) 좀 빨랑 먹자!”
– 창 25:30
야곱은 죽으로 된 자신의 아돔(הָאָדֹם֙/ 붉은 것)을 내어주고 에서의 생득권 아드모니를 산 것이다.
(야곱의 ‘붉음’은 죽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다윗이 지녔던 붉은 빛이란 얼굴 또는 머리카락의 빛깔을 표지한다기보다는 그 자신에게 유지되고 있는 충실한 형상(아담)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고르시는가?
붉은 사람.
붉은 흙/적토와 같은 사람.
씨를 심으면 곧 싹이 날 사람.
이런 사람이 성서에서 말하는 크리티브 한(창조적인) 사람인 것이다.
다윗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에필로그.
성서일과 마가복음 4장 28절에서는 아울러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라고 하였다.
적토가 아닌 사막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에게서 무슨 붉은 빛이 돌겠는가?
* 2015.6.14. 성령강림 후 제 3주 |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 성서일과, 삼상 15:34~16:13; 막 4:26~34. (cf. 시편 20 혹은 시편 92; 고후 5:6~10, (11~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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