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싫어 하는 용어는 <순종>이다.
<순종>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책들을 혐오하고
그것을 공동구매 시키는 행위도 매우 혐오한다.
그러나 말씀의 영(令)이 있어 이 글을 남겨야겠다.
히브리서 10장 5절 이하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것은 시편 40편 6절 이하를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시편에는 정작 이렇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부분이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로 변한 것이다.
특히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but you have given me an open ear…)
부분을 마소라 사본을 기준으로 직역하면
“but you have pierced my ears…”,
즉, <내 귀를 뚫어 주셨기로…>가 된다.
히브리서 저자의 구약에 대한 인용 폭은 ㅡ 특히 시편 ㅡ 매우 광대하지만 그 주관적 신학이 참으로 창대하다.
히브리서에 요한복음 처럼 ‘선재 기독론’(먼저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귀>에서 <몸>으로 변하는 주관적 인용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70인역에서의 인용 관계를 추적 가능하지만 이것은 본문비평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예비된 (주님의) 몸’의 속성에 관한 교시다.
귀가 몸이 되었다 함이 무엇인가?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23)는 텍스트와 맞닿은 이 순종이
화육(化肉) 즉, 인카네이션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귀> 곧, <듣는 것>이 <몸>이 되었다ㅡ라고 하는 이 독특한 증언 앞에
우리는 무엇을 새겨야 할까…
뚫리지 않고 여전하기만 한 스스로의 귀를 통탄할 밖에…
에필로그.
내가 ‘순종’을 혐오한 이유는 ‘순종’을 요구하던 자들이 대개 ‘맹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귀’(듣는 것)가 ‘몸’이 되었다 함은 맹종의 촉구가 아니라,
오성(悟性) 즉, ‘이해의 마음’(왕상 3:5-12)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어느 정도, 맹종의 배격을 틈타고 우리의 오성이 마비 되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 2015.12.20. 강림절 4주차 |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히 10:5~10. (cf. 미가 5:2~5a; 누가복음 1:46b~55; 누가복음 1:3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