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이어지는 것

부활은 이어지는 것

 
 
한 왕에게 세 딸이 있었다. 그 중 막내가 가장 아름다웠다. 어릴 때부터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던 사람들은 소녀가 다 커서 성년의 공주가 되자 칭송에 지나쳐 숭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에 화가 난 미(美)의 여신은 자기 아들에게 명하여,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추한 생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라고 시켰다.

아들은 다름 아닌 큐피드, 엄마는 아프로디테. 화살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간 이 아들 녀석은 그녀를 본 순간 아름다움에 깜짝 놀라 그만 화살촉에 자기 몸이 찔리고 말았다.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는 아폴론에게 부탁해 공주의 아버지에게 신탁을 내리도록 했다.

Theseus and the Minotaur 1781-83 Marble 145,4×158,7×91,4cm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그것은 악마가 공주를 아내로 데려갈 수 있도록 신부 의상을 입혀 산꼭대기에 세워 놓으라는 신탁이었다.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신의 명령이었지만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신부 복장을 하고서 악마가 끌고 갈 때까지 체념하고 있던 그녀를 데려간 것은 서풍이었다. 그리고 서풍에 실려 간 곳은 황금 궁전.

악마가 혹 나타날까 밤이 되도록 마음 조리고 있는데 드디어 악마가 나타났다. 그러나 남편으로 온 그 악마는 친절하기 이를 때 없었다. 꿈같이 행복한 날이 이어졌다. 안락한 궁궐에서의 생활이 이어졌고 남편은 무서운 괴물이기는커녕 자상하기만 했다. 단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만 빼고는.

자기 모습을 보려 하지 말라는 것은 남편의 유일한 부탁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었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공주가 어느 날 일상의 무료함을 느낄 때 가족이 생각났다. 자신이 괴물에게 끌려갔을 줄 아는 부모님과 언니들. 남편에게 겨우 허락을 받아 언니들을 잠시 데려오게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동생이 이처럼 멋지게 사는 것을 본 언니들은 질투심이 생겼다. 그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남편은 괴물일지도 모른다며 반드시 그 실물을 확인하라고 부추겼다. 혹시 본색을 드러내면 죽이라고까지 하였다.

언니들의 말에 넘어간 그녀는 어느 날 잠든 남편에게 램프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자 지금까지 지상에서는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남성의 모습에 놀라 그만 기름을 떨어뜨렸고 남편은 깨어나고 말았다. 이내 회한의 표정을 지으며 날아가 버리고 만 남편 큐피드/ 에로스.

그 날 이후로 남편을 만나고자 온갖 시험과 고난의 길로 접어든 이 여성의 이름은 바로 프쉬케이다. 그 애절한 사연을 들은 주신(主神)의 도움을 받아 나비가 되어 천상계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프쉬케.

Tenerani Pietro 1834 Galleria Nazionale d’ Arte Moderna Rome Italy

이 이야기는 프쉬케 곧, ‘영혼’이라는 명사에 담긴 이해의 전형이 되었다.

고대인들이 ‘영혼’(ψυχή)이라는 명칭 자체를 의인화시켜, 의인화 된 ‘그녀’를 통해 어떤 태(態)의 변화로 이해했고, 또 그것을(그 태의 변화를) 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의 부활도 일종의 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활은 저 그리스 신화뿐 아니라, 이집트의 오시리스 이야기 등 고대로부터 널리 퍼져 있는 내세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부활과 세속의 부활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저 프쉬케가 그런 것처럼, 세속의 ‘태의 변화’는 대부분 어떤 개인의 한(限)이 그 변화의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부활과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의 부활은 오로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만 이룰 수 있다(롬 6:5). 원한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그리스도 예수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접촉을 한 일도 없는데 어찌 연합을 할 수 있을까? 믿음으로? 믿음으로 어떻게…? 믿음만큼 만능의 교리도 없을 것 같다. (현대적 믿음이 그 만큼 추상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 추상적인 믿음의 공백을 채우려면, 그 믿음엔 내용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 채워질 주된 내용을 우리가 의(義)라 부른다. 우리는 실존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지대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닌 의의 지점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실존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의란 우리의 의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의의 부재, 의의 공백을 이른다. ‘의의 공백’이란 불의한 상태이거나 혹은 자기의 의로 충만한 상태와는 다르다. 그것은 일종의 ‘무고한 상태’(setting in guiltlessness)라고나 할까… 죄인이 어떻게 무고한 상태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테면, 여전히 우리에게 통증을 안겨주고 있는 ‘세월호 학생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 시간과 공간을 붕괴시킬 정도의 – 지점이 형성되려면 적어도, 우리가 지금 비통하게 목격하고 있는 이 장면, 곧 ‘세월호’에서 희생된 저 아이들이 뒤집어쓴 저 천인공노할 ‘무고함’ 정도가 우리에게도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라고 확정지어 썼을 정도로 당시에는 다들 감성에 교리가 무너져 있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한 시·공간의 벽을 붕괴시키는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그 정도의 ‘무고함’이면 될까? 그 정도면 ‘의의 공백’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아직도 적지 않은 기독교인에게는 그 (사적인) ‘무고함’이 그리스도의 무고함을 앞지를 수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수정.(2017.4.25)

다만 적어도 이 과정에서 ‘의의 공백’이란 다름 아닌 ‘무고함’이라는 사실 만큼은 밝혀졌다. 여전히 감성으로는 그리스도의 무고함과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무고함은 원한이 아닌 진정한 회개와의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무고함. 우리는 어떻게 무고함에 처할 수 있는가.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파식 기독교도에 의해 저 무고함의 학생들이 무참한 희생을 당하고 그래서 사실상 그 아이들의 하마르티아(ἁμαρτάνειν , 결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나라 기독교사 현 시점에 격랑이 아닐 수 없다. ‘민중 메시야론’이라도 용인할 기세.

무고함은 참되고도 진정한 회개로써 이루는 것이다.

Pietro Tenerani (1789-1869) Italian Ieoclassical Sculptor has Works Displayed in Major Museums such as his beautiful Psyche in a FaintIn the Hermitage

* Tenerani Pietro는 이 프쉬케라는 작품을 여러 벌 만든 것 같다.

 

에필로그.

 
산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변모하시는 장면을 성서 저자가 기록할 때, 나비의 태가 변하는 표현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다. 메타모르포시스(μεταμόρφωσις).
우리의 어떤 태가 메타모르포시스 하는 것일까?
황금? 몰약? 유황?
적어도 ‘원한’이 메타모르포시스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히 해두자.
부활은 썩지 않는 것, 더럽지 않은 것, 낡지 않는 것. 그것들이 변하여 이어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활은 (끊어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 2014.4.27.일자 부활절 제 2주차 | 부활은 이어지는 것 | 성서일과, 벧전 1:3-9. (cf. 행 2:14a, 22~32; 시 16; 요 20:19~31.).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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