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모두가 그랬듯이 세월호 사고의 충격 여파로 다분히 감정에 젖은 가운데서 구원론에 관한 회의적 시각을 담았던 글이다. 그러나 3년이 흐르면서 상처 받은 사회의 다양한 격변 속에서, 진리란 왜 불변해야 하는지 깊은 반성으로 수정을 가하였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국민적 슬픔이 사흘도 안 되어 양분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까지 나서서 광분해 있는 동안 사실 난 하나님의 의(義)에 격분한 마음으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1) 세월호 희생자의 義
희생자 대부분이 무고하게 ― 의롭게 ― 죽은 자 태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구하느라 빠져나오지 못한 선사의 말단 여직원, 여학생에게 자기 구명조끼를 입혀 먼저 내보낸 남학생, 자기 제자들을 여럿 살리고 죽은 선생님.., 이들의 의로운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지닌 무고함은 어떤 부도덕한 선박회사의 피해자로서만 아니라 무능한 구난 시스템의 희생자로서, 더 나아가 무감각하고도 무기력한 우리 모두의 중심에 놓인 명백한 희생이었기 때문에 재형(再形)되는 義이다. 義가 재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의 義는 재형되는 게 아니라 고유하면서도 이미 확정된 義임을 재차 확인하였다.
게다가 이 아이들의 그 무고한 죽음은 현재 우리 모두의 야만성과 포악함까지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유비된다. 유비는 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고유한 것이다.
목회자들이 그토록 격분된다면 자기들이 닫아걸고 있는 천국 문이라도 활짝 열어주면 좋으련만 어떤 목회자 입에서는 희생자 가운데 그리스도인만 살아 돌아올 것이라느니, 불신자는 죽게 될 것이라느니.., 했다는 전언을 듣고서는 내 귓구멍을 파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그런 무지한 목사의 설교는 우리 기독교 교리가 그 희생자들의 구원이나 부활에 어떠한 교리로도 길을 내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 같은 것 아니겠나 하는 무기력감이 나로 하여금 다시 이 베드로전서를 펼쳐들게 만들었다.
(2) 연옥설
갑자기 무슨 연옥설인가 싶겠지만 아마도 연옥설은 이런 문제 때문에 존속되어 왔을 것으로, 사실 면죄부는 교회 건축 때문에 생겨난 교리였지만 연옥설은 면죄부와는 별개로 꽤나 유서 있는 교리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20절과 마카베오후서 12장 43-45절을 토대로 하는 이 교리는 일부 교부들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는 이 연옥 교리를 암시하는 가장 오랜 문헌이다.
영지주의자였던 마르시온도 이를 주장했지만(2세기) 오리겐 역시 사후 회개의 가능성을 개진하였다. 특히 그의 형벌에 관한 치료적 개념과 이 사후 회개 가능성 개념이 중세의 연옥 교리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이 제식화 된 것은 교황 그레고리 I세 때이며, 공식화는 플로렌스 공의회(1439년)에서 이루어졌다.
(3) 카톨릭과 개신교의 연옥설
카톨릭은 불로 영혼을 정화한다는 이 연옥 외에도 두개의 림보(limbus)를 더 제시하였다. 구약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머물렀던 곳으로서 선조들이 머무는 림보, 그리고 세례 없이 죽은 아이들의 처소로서 유아들이 머무는 림보가 그것이다. 이 림보라는 용어가 영화 <인셉션>에서 나온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cf. 4:1-4)이 바로 전자인 ‘선조 림보’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불신자의 사후를 유동적 상태로 보는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사실을 대개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반면 불신자의 사후를 부동의 상태로 공식화하고 있는 개신교는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며 아울러 대략 세 가지 해석을 갖는다.
우선 카톨릭의 해석과 유사하게 ① 죽음과 부활의 사이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 그곳에 갇힌 영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설명이다. 그들을 노아 시대 또는 그리스도 이전의 모든 사람들로 본다는 점에서 역시 문자적이지만 견해에 따라서는 구약의 영혼에게 지옥으로부터 석방을 전파한다는 이해를 넘어 죽은 모든 사람에게 사실상 다시 회개할 제2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견해까지 있다. 그 다음은 ② 성육신 이전 선재 상태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노아를 통해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설명이 있다. 그것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지옥에 갇혀 있다고 설명한다. 끝으로 ③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했다”는 대목을 승리의 선언적 그리스도 활동으로 보는 견해다. 전도가 아니라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파’가 아닌 ‘선포’라는 문자 이해를 여기서는 강조한다. 선포는 구원의 수단이 아닌 단지 선언이라는 의미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벧전 4:6)는 대목과도 조화를 이루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나 애매한 사후에 걸리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합리적 해석이기에 고대의 많은 교부들이 채택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죽은 자가 어찌 구원을 받게 되는지의 불확실함, 또 그들의 사후 구원을 부정하는 다른 본문과의 배치를 피할 수 없는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국 연옥설과 만나게 된다는 약점을 지닌 까닭에 개신교 정통 교회는 첫 번째를 거부하는 선에서 교리가 확정되는 편이다. 이러한 연옥설의 부패를 야기한 면죄부에 대해 개혁을 감행했던 루터는 정작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가 없다’고 하고는 그냥 덮어버렸다.
(4) 성서와 조직
이상과 같이 요약된 정리임에도 길기만 한 이 설명의 전개는 사실 해석이라기보다는 ‘조직’에 가깝다. 실제로 우리는 성서에다가 우리를 조직하기 보다는, 성서를 우리 실정에 맞게 조직하는데 능하다.
예컨대,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은 일종의 레토릭으로 받아들여 천국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지만, 여기 베드로전서 3, 4장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지옥문을 드나든 문제는 가급적 그 문을 닫아두려는 태도도 그러하다.
목회자들이 세월호의 슬픔과 분노로 그렇게 격분이 된다면 그러고만 있을게 아니라 그 불쌍한 애들이 들어갈 천국문이나 좀 마련해두지 않고서. 라며 격분이 든다고 해서 자기 맘대로 확정된 천국/지옥문을 열고 닫는 감정적 신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신성목독일 뿐 아니라, 영혼에 화인 맞는 지름길이다.
그랬다간 아마도 이단이 되고 말 것이다. ‘아마도’가 아니라 명백한 이단이다. 그리고 연옥설을 따르는 그 목사에 모독을 느낀 그의 성도들은 다 그를 떠날지도 모른다. ‘연옥설’을 주창하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5) 천국문과 지옥문
필자 역시 이 교리에 반하여 그 어떤 천국문을 열어줄 신분도 지위도 아니지만, 예수 말고 누가 그런 지위와 권세를 가졌겠는가. 적어도 이번 희생자들의 희생이 우리를 가격하고 들어온 이 격분은 다름 아니라 그 문의 열쇠를 쥔 우리의 위선에 봉사하는 교리를 백일하에 까발리는 하나님의 커밍아웃이었던 것임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보다 더한 슬픔과 비극이 우리에게 닥쳐도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인정해야 하며, 그분의 위로를 구할 따름이다.
따라서 그 문을 더 열어 줄 수는 없으나 대신 이렇게는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저 무고한 학생들이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필자를 포함) 그 어떤 명망 있는 사제들이라 하더라도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즉, 문을 더 열 수는 없지만 더 닫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천국의 문 말이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만큼, 지옥의 문은 상대적으로 이 시대에 한층 더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빌미로 확정된 교리에 손을 댄다면.
천국문이란 언제나 지옥문과 반비례하여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아이들의 수를 우리가 직접 세어보고 있지 아니한나?
그래도 싸우고만 있을 텐가?
오늘 부활절 얼마나 많은 설교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우려 먹을 것인가… ‘나는 하지 말아야지’ 했다가 그만 나도 그리 하고 말았다.
(* 2014.4.20 | 부활절 | 벧전 4:1-8: cf. 3:18-22.)
에필로그.
※ 아래는 2014.4.23일자에 한 인터넷 매체에 냈던 기고문이다. 아래의 내용을 지금 이 시간 현재, 그대로 다 의견으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진리란 감정과 상황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님을 거듭 천명하는 바이다.
안병무(1922-1996)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늦은 나이에 신학이라는 학문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다. 내가 그분께 직접 듣는 세대는 아니었기에 주로는 저서에서였지만 직접 들은 세대였던 선배께서 전언하길 안 박사께서는 강의를 하시다가 ‘인자’를 언급하는 대목에 가서는 곧잘 눈물 흘리며 우셨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인자(人子)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 나사렛이라는 촌락의 그 분이 아니라 민중(民衆)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주님을 집단 대중으로 대체해 거기서 감흥까지 꾀할 수 있단 말인가? 내심 이르기를 그것은 나와는 다른 노선의 신학, 아예 완전히 다른 것, 자기들의 이념 노선을 위해 고안해낸 신학 정도로 규정하면서 나는 나의 신학을 발전시켜나갔다.
신앙-신학 하는데 노선이란 게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는 사실을 SNS라는 공간에서 더 명확하게 굳혔다. SNS. 이 계륵과도 같은 SNS, 여기서 만나 팔로우 요청해오는 대부분의 목회자는 아마도 전통을 향한 나의 비평적 논조에 끌려서일 성싶다. 그러나 정치나 이념에 부친 상당한 괴리는 피차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같지만 다른 면을 보면서 말한다. 함께 엮여 있으면서도.
지난 16일 남보다 비교적 빠르게 ‘세월호’ 비보를 접하고서는 신문사 홈페이지 들어갔다가, SNS 펼쳤다가, 포털 뉴스란 들어갔다가, 다시 신문사 들어갔다가를 온종일 반복 하면서 정말이지 탄식이란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저절로 쏟아지는 내 입의 신음.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그 정도의 탄식은 없었다. 모두가 그랬듯 이내 탄식과 슬픔은 분노로 변해갔다.
그러면서도 그때 하필 안병무 박사의 그 ‘인자’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평소 그토록 거부로 일관해온 그의 인자 개념, 민중메시야!
아무 잘못 없는 어린 학생들의 무고한 죽음은 처음에는 부도덕한 선박 회사에 의한 희생 정도로 비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선박 회사만이 아니라 무능한 정부가, 더 시간이 흐르면서는 무능한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서 비롯된 희생이라는 인식으로 확진돼 나가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그리스도의 희생도 이와 같은 무고함에 대한 인식 과정을 통해서 확산된 것일까?
게다가 그 무고한 아이들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야만적이고도 포악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종사하고 있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잡혀 죽으시던 그 때처럼. 따라서 이와 같이 몸서리치는 우리의 가책을 타고 들어온 이 희생의 아이들은 바로 ‘인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인간이 아무리 의롭게 죽더라도 그것은 죄 가운데 죽는 것이니라.
인간이 왜 까닭 없이 죽는지 아느냐? 쏠리다리티(연대)라는 개념이니라.
그동안 내 입을 통해 튀어나갔던 그 모든 공학적 교리가 그만 이 ‘인자’로 인해 완전히 해체 당하고 만 것이다.
안병무 박사께서 어떤 이념 신학을 펼쳤건, 그래서 그 인자가 ‘가난한 자’에게만 국한 되었건, 또 그 자신의 신앙이 어떤 경지에 있었건, 나는 확실히 그 거장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에 불과할 뿐임을 진심어린 깨달음으로 회개 하였다.
그럼에도 세월호와 부활절,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이념적 대치는 ‘인자’ 된 저 아이들의 희생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민족의 그칠 줄 모르는 갈림과 맹렬함의 죄성이란 마치 유대인의 그것과 같아 본래 그렇다 치더라도, 목사들까지 나서서 보복의 칼날을 복음 대신 내던지고 있다.
복음의 본성은 화합과 용서가 아니던가?
우리 모두에 의해 희생된 이 무고한 아이들을 ‘인자’가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불귀의 원혼이 되게 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구현하는 복음의 본성에 달려있다.
…
….빌라도는 그 맹렬한 민족에게 인자를 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보라 이 사람을”(에케 호모!)
그러나 나는 지난 사순절 마지막 날 이 복수(plural)로 된 인자를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탄식을 흘렸다.
“보라 이 아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