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쫓는 장면이 금주 성서일과 본문이다. 요즘도 많이들 쫓나 모르겠다. 예수님의 축귀는 상징인가 실재인가? 자의든 타의든 요즘의 교회는 직접 악령을 쫓기보다는 심리요법 등으로 해결을 보는 것 같다. 심리 요법은 더 타당한가?
(1) 악령 축출 체험
젊을 때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중에 학생들에게서 악령 드러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A 학생에게 성경 구절 한 곳을 읽으라고 시켰더니 한참을 읽지 못하고 입을 오물거리며 이상 행동을 해보였다. 그러고 있을 때 갑자기 곁에 있던 B라는 학생이 그 A를 향하여 식식거리더니 “아무개야! 읽지마!” 하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뭐라구?”
다시 재차 성경 읽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처음 그 애는 계속 입을 오물거리며 떨고만 있고, 다른 한 애는 그 떠는 아이를 향해 “읽지마!”라며 연신 외치고 있었다. (모두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애들이었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내쫓았다. 두 사람 모두에게서 악령이 쫓겨나갔다.
그 일 이후 내게 부여된 영적 권위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전도를 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전도를 해왔고 모일 때마다 갖은 체험이 일어났다. 한동안을 이런 분위기가 지속 되었으나 결국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일련의 방식에 의문이 들어 그만두고 말았다.
첫 째는 정신이든 육체든 완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회당의 귀신 들린 자나 거라사의 귀신들린 자의 체험은 자기 일생일대의 체험이었을 텐데, 오늘날의 체험자는 대개 상.습.적.인. 체험자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얻었던 그 권위의 토대가 사실은 어떤 ‘두려움’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대로 그 두려움을 이용하고 있었다. 눈에도 힘주고 목소리에도 힘을 주고.
(2) 지킬 박사와 하이드
권위 있는 기독교 엑소시스트(exorcist)들이 모든 악한 사태의 원인을 악령으로 돌리는 것이나, 권위 있는 심리요법사(psychotherapists)들이 모든 악한 사태의 원인을 무의식에게로 돌리는 것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도리어 심리요법이 출현하기 약 30여 년 전에 발표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이야기는 위 두 아류의 경계선상에서 진정한 실존적 ‘귀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악령과 나’는 ‘무의식과 내 자아’와의 관계처럼 분리하려야 할 수 없는 하나의 단일 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실생활에 개입하는 악마는 어떻게 실존하는가? 정수리에 뿔이 달린 형태로 실존하는가? 머리 풀어헤치고 눈과 입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실존하는가? 악령이라고 하는 제3의 존재는 오로지 우리 인간을 통해서만 실존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성서에서는 단 한 차례도 인간 개인이 저지른 잘못을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4차원?) 악마에게 돌린 적이 없다. 만약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악마의 ‘것’으로 대응시킨다면, 그것은 마치 ‘대속’을 악마가 담당하는 것만 같은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대속은 그리스도만 담당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악마의 죄를 가져갔다는 것도 그릇된 교리이다.)
모든 악의 기원이 사단인 것은 맞지만 인간이 죄와 분리될 수 없다면, 악마와도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인 것이다. 둘은 분리할 수 없다.
(3) 권세 있는 새 교훈
특히 지금까지 구약에서는 그 악의 존재 자체가 단 한 번도 ‘실존’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 단지 어떤 의인화로 등장했을 뿐이지 악이 제3의 존재로서 등장한 적은 없다. 제3의 존재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맞닥뜨리자 그 분리되지 않던 존재가 실존으로 분리되고 만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갖는 위엄이자 권위(εξουσία, authority)인 것이다.
그렇다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던, 분리된 바로 그것은 무엇인가? 정수리에 뿔난 그것인가?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귀신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다음 일화로 그 분리될 수 없었던 그것과 분리되었던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지난주에 한 법정에서 존속살해범이 재판을 받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어머니를 살해한 그에 대해 판사는 주문하기를 다른 형제로부터 합의서나 탄원서가 들어오지 않았기에 부득이(?) 이런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노라며 판결문을 완곡하게 읽어나갔다. 10년 형.
이유는 정신병 때문이었다. 만약 다른 가족들의 탄원서라도 들어왔더라면 10년 형보다도 더 줄었을 것이다. 무려 10년형!
이것은 일종의 트랜드/패션이다.
어떤 시대에는 엑소시스트들이 교회를 활보하고, 어떤 시대에는 심리요법사들이 교회를 활보하는 식의 패션처럼, 트랜드나 풍속은 문화나 종교뿐 아니라 사회·정치, 심지어 법 체계에까지 전방위로 포섭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대는 사람과 악령이 완전무결하게 결탁한 시대이다.
왜? 자신의 병이나 가난이나 모든 저주를 악령에게 돌리는 것처럼, 자신이 저지른 말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조차도 알코올이나 정신병과 같은 심신미약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용이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본문을 결코 어떤 무속신앙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문에 의하면 오로지 그리스도께서만 사람에게서 악령을 (경련을 일으키며 떠나갈 정도로) 명확하게 분리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아직도 영화 엑소시스트 떠올리는 사람이 있나? 특히 악령의 괴성과 경련보다 중요한 것은 ‘잠잠하게 된 것’과 ‘순종하게 된 것’이다.
악령의 순종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악령을 조종하고 활용할 텐가? 그런 것이 아니다.
잠잠함과 순종의 의미는 지킬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결코 악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에 대한 자인(自認)인 것이다.
그럼에도 권위 있는 엑소시스트들과 권위 있는 심리요법사들, 그리고 오늘날의 관대한 법정들이 도리어 이 악령들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태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이 절실한 까닭이다. 그랬더라면 지킬 박사가 범했던 오류 즉, 감히 섣부르게 선과 악을 분리하려는 일련의 모든 기술적 시도 ㅡ 어설픈 엑소시스트, 방만한 심리요법, 자비에 만용된 법 ㅡ 들을 뉘우쳤을텐데.
에필로그.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 흥미로운 점은 약물이다. 나중에 지킬 박사는 약물 재조합에 거듭 실패한다. 왜냐하면 당초 처음 조제해서 복용한 약물에는 어떤 불순물이 우연히 들어가서 된 약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인간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자 시도했던 지킬(Dr. Jekyll)의 노력이, 결국 ‘착오’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착오’는 종종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낸다. 페니실린도 ‘착오’로 발견된 물질 아니었던가? 페니실린을 악마가 선물한 게 아닌 이상.
* 2015.2.1.일자 주현절 후 제4주 | 제목: 권세 있는 새 교훈 | 성서일과, 마가복음 1:21~28. (cf. 신명기 18:15~20; 시편 111; 고린도전서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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