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모르포시스

‘겉사람과 속사람’ 설교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

    이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표제 ‘겉사람과 속사람’에 관한 메시지가 별다른 주석 과정 없이도 성서일과에 의해 달라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달라졌다기 보다는 원래의 의미인 것이다. 다음은 이번 주 성서일과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본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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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 목사가 받았던 변화

    이 글을 읽기 전에 나는 이념적으로는 거의 극우에 가깝다는 사실을 일러둘 필요가 있다. 오늘은 본의 아니게 우리에게 ‘고문기술자’로 더 잘 알려진 이근안 전 목사에 대해 언급하였다. 성서일과 주제가 ‘변화’였기 때문이다. 특히, 파문당한 그는 변화를 받긴 했던 것인가? 변화 받았는데 다시 돌아간 것인가? 아니면 아예 변화를 받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근안만이 아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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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이어지는 것

    한 왕에게 세 딸이 있었다. 그 중 막내가 가장 아름다웠다. 어릴 때부터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던 사람들은 소녀가 다 커서 성년의 공주가 되자 칭송에 지나쳐 숭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에 화가 난 미(美)의 여신은 자기 아들에게 명하여,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추한 생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라고 시켰다. 아들은 다름 아닌 큐피드, 엄마는 아프로디테. 화살을 들고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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