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명의 독자가 공감하셨습니다 

아라크네는 베짜기와 자수의 귀재였다. 아버지가 염료를 잘 쓰는 염색의 명장이었던 까닭일까? 그녀의 재능은 아테나 여신의 영이 임했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을 정도였다. 아테나는 전쟁과 파멸의 여신인 한편 직조의 여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Antonio Tempesta, Etching, 1606

하지만 그런 칭찬을 들을 때면 그녀는 아테나를 모독했다. 자신이 여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노파로 변신한 아테나가 그녀를 직접 찾아왔다. 신을 모독하지 말고 속죄하라는 충고를 해줬다. 그럼에도 무시하며 내쫓자 아테나 여신은 노파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결투를 신청한다. 베짜기 결투.

Francesco del Cossa, oil painting, 1460

사람들도 몰려와 구경을 했다. 아테나는 아테네(Athens) 전쟁에서 포세이돈과 자신을 포함한 신들이 교만한 인간들을 무찌르는 장면과 함께 화해의 상징인 올리브를 수놓았다.

아라크네는 어떤 것을 수놓았을까? 그녀는 놀라운 솜씨로 여러 신들의 변덕스러움과 특히 문란한 성생활을 수놓았다고 한다. 신들의 권위를 발가벗겨 모욕을 한 것이었다.

아테나는 그녀의 놀라운 솜씨에 찬탄했지만 신을 모욕한 그녀의 이마에다가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아라크네의 인식의 문이 열려 신들이 느꼈을 모욕 이상의 수치와 치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만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 만다.

여신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불쌍히 여겨 아코니트 즙을 뿌려 그녀를 거미로 만들어주었고 그녀의 목에 매달았던 밧줄은 거미줄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 거미가 된 그녀와 그녀의 후손은 영원히 실을 잣게 되었다.

Jean Lepautre, Etching and Engraving on Paper 1676

나는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쯤 아침에 차안에 들어서면서 거미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을 잊을 수 없다. 엊저녁만 해도 없던 거미줄이 운전석에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미 때문에 놀랐다기보다는 거미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Cheonan, 2002.

아니 어떻게 저 작은 몸집에서 저렇게 많은 실이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룻밤 새에 저렇게 자기보다 큰 웹(Web)을 다 짤 수 있었을까? 생물학에서는 당연히 ‘본능’이라고 일축하고 말겠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어떻게 저렇게 작은 것이 저토록 기하학적인 구조를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거미 종 마다 다른 형태의 웹을 친다고 한다)

아마도 거미 자신은 자기가 어떤 모양을 그리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지척에 보이는 지형을 향해서만 실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지형을 바라보고 열심히 길을 밟아 나가지만 자기 웹의 전체 그림이 어떤 형태를 띠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그것이 어떤 방사성 모양과 같은 절대 경로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아니 부정을 한다)  이것이 아라크네 그녀가 가졌던 재능이자 교만,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모두가 감금 당한 하마르티아 아니겠는가?

그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오로지 죽음 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인식의 문을 넘어가는 길뿐일 것이다.

에필로그.

대체로 웨슬리안이나 (아나)뱁티스트들은 이 방사성 그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대체로 프레스비테리안들은 이 방사성 그림을 다 본 것처럼 말하는 차이가 있다.

양쪽 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가 인식하는 #크로노스 는 우리 각자의 소중한 날줄 곧 #카이로스 를 태우고 가는 씨줄에 불과한 것이지 어떤 악은 아니다.(cf.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784621058236982&l;=b7c003f648 )

내가 좋아하는 벨라스케스의 그림도 있네. 1660년작


* image ref. http://lbslatin.wordpress.com/2013/10/20/minerva-et-arachne/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