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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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밀려날 데가 없는 분

브엘세바

브엘세바는 세겜, 헤브론과 더불어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아브라함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세겜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처음 장막을 친 곳이고 헤브론은 아내 사라를 장사 지낸 곳이다. 세겜과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편입돼 접근이 통제되고 있어 브엘세바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만민의 아버지”가 된다는 위대한 약속을 받았지만 몇 가지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결정적으로 자녀가 없다는 점 (사실상 자녀의 생산 가능성이 전혀 없었음), 둘재 토지가 없다는 점, 셋째 그렇다보니 인접한 외부세력에 한 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신분(이방인)이라는 문제였다. 우리는 흔히 그가 백세에 아들을 낳는 이야기에만 몰입해있지만, 공동체를 이끌어야 하는 책무가 주어진 아브라함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외부 적대 세력과의 지속적인 분쟁이었다. 특히 블레셋 영지가 주 거점이던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과의 끊이지 않는 샘을 둘러싼 분쟁은 가장 큰 골치거리였다.

그러다 마침내 샘을 하나 확보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브엘세바였던 것이다. 아비멜렉과 협정을 맺어 이를 확보하고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이름 짓기를 “맹세의 우물”(일곱 우물)이라고 지었다. 단순히 적대 세력과의 협정으로서 맹세가 아니라 주거가 안정되지 않았던 자기 공동체에게 안정과 평화를 확보해줄 수 있는 거점이어서였을 것이다. 브엘세바는 아버지 사후에 이삭이 아버지처럼 아비멜렉에게 시달리다가 역시 샘을 재확보한 바로 그곳이다. 또한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준 곳이며, 애굽 총리가 된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모셔 갈 때 야곱이 마지막 잠을 잔 곳인가 하면, 일찍이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 사막으로 향하면서 잠시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로뎀나무가 키워드인가 구운 떡이 키워드인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냄으로써 명실상부 대 예언자로 데뷔 한 엘리야가 아합과 바알 사제들에게 도전장을 낸 끝에 예배에 승리를 거두고, 거기서 그치지 않아 계속 밀어부쳐 그들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왕상 18:1-40) 자신이 수 년 간 멈춰 놓았던(왕상 17:1) 비까지 다시 오게 만드는 위력있는 영성을 발휘하지만 이세벨이 다짐한 보복의 소식을 듣고는 서둘러 도망친다(왕상 19:2).
그리고 그가 찾아간 곳이 바로 브엘세바다(3절). 그는 브엘세바에 사환을 두고는 광야로 좀 더 들어갔다. 힘을 보충하려는 의도 보다는 아마 죽으려고 그렇게 더 들어갔던 것 같다. 그곳에 들어간 그는 기진맥진 한 상태로 그늘이 될 만한 로뎀나무를 발견하고는 그 아래서 잠이 든다. 일어나 보니 곁에 구운 떡과 물이 조금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먹고 마신 힘으로 그 지점으로부터 “사십 일”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의 영혼은 몇 가지 부분과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 먹(고마시)는 부분 (2) 감각하는 부분 (3) 움직이는 부분 (4) 생각하는 부분

우리는 주로 먹을 것을 위해 움직인다. 감각을 좇아 움직이기도 한다. 먹을 것을 위해 움직이는 것과 감각을 좇아 움직이는 것은 다 ‘생각’을 통해서 가능하다. 먹는 생각 미감/쾌감 다 ‘생각’이다. 그러나 먹는 것과 그 감각이 완전히 배제된, 생각만을 위한, 생각만에 의한 우리의 움직임이 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면서도 가장 우월한 단계의 영혼의 부분이다. 그것은 먹는 것과 감각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최고의 부분이다보니, 그곳에는 언제나 먹는 것과 감각이 제거되는 혹독한 경험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다. 광야는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영혼의 공간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시 42:1-5) 우리 영혼은 그 샘의 원천을 찾아 헤매고 거기서 가장 원초적인 식량, <물>을 만난다. 그 샘, 브엘세바에 다다르는 것이다. 일곱 우물의 장소, 아브라함과 이삭이 맹세한 영적 장소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영혼은 그것 만으로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19:4), 완전한 탈진(burn out)의 공간에 들어서고 마는 것이다. 엘리야는 브엘세바를 지나 바로 그 구역까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로뎀나무를 만난다.

기왕 광야로 나가 만난 기적이면 더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나야 하는데, 불덩어리들을 만난다.

모세는 (불에 타지 않는 나무) 떨기나무를, 엘리야는 (불이 까지지 않는 나무) 로뎀나무를-

에필로그 | 광야에서 왜 구운 떡을 주셨는가.

두 명의 여행자가 로뎀나무 가지들을 연료로 삼아 밥을 지어 먹었는데 1년 후 가보니, 그 재 속에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유대인의 전설이 있다. 그래서, <숯 재료로 가장 좋은 나무> 곧, <천사가 숯불에 구운 떡을 놓고 간 나무>는 둘 다 같은 나무이다.
이 불을 연료 삼아 엘리야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산 호렙에까지 다다르는 것이다.

* 2013년6월23일자 본문, 왕상 19:1-4, (5-7), 8-15a (c.f. 시 42 & 43 갈 3:23-29; 눅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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