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베로니카의 수건
544년경 에데사(북 시리아)는 페르시아 침공을 받았다. 당시 그들은 <아브가르 왕의 수건>이라 부르는 천 조각 하나를 500여 년간 보관해오고 있었는데 성벽에 걸어놓자 그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브가르는 그리스도 생존 당시 에데사 왕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해 궁금해 하던 그는 화가에게 그리스도를 그려오도록 시켰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화가를 거절하고 대신 직접 수건에 얼굴을 눌러 찍어 보낸 것이 바로 그 천 조각의 유래다. 
 한편, 그리스도를 따르던 무리 중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있었다. 신심이 좋은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잡힌 후 십자가를 지던 길까지 따라나섰는데 엄청난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진 그리스도께 황급히 자신의 머리 수건을 풀어 건네었다. 그러자 그 분 얼굴에 맺힌 땀과 피가 닦인 그 수건에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고 전한다. 앞서 동방교회의 <아브가르 왕의 수건>이야기에 대항된 서방교회의 유명한 <베로니카의 수건> 이야기다. 이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 그려지지 않은” 그림이라는 사상을 타고 출현해 두 교회가 경쟁하듯 전설과 함께 유포되었으며 미술사가들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성상을 그린 초상화의 효시라고 입을 모은다. 서방과 동방교회는 이런 성상 여부를 두고 오랜 논쟁과 피를 부르는 다툼을 벌였지만, 분명한 사실은 각기 다른 명분 속에서 성상은 양 쪽 진영에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프린서플 |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손으로 짓지 아니한”이라는 사상은 오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성전을 직접 겨누던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으시다”고 했다가 돌에 맞았으며, 예수님 역시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막 14:58)고 선언하심에 순교의 제1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히브리서에서도 “손으로 짓지 아니한…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9:11)라는 개념으로 이어 받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 8:27)라는 논조로써 아예 일치감치 솔로몬이 지은 처음 성전과 맞닿기도 합니다. 주로는 성전을 두고 논의된 것이지만 “손으로 지은 것”과 “손으로 짓지 않은 것” 간에 야기되는 문제는 한마디로 구태(舊態)와 그 구태에 맞선 개혁 문제로 종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손으로 그린 그림과 손으로 그리지 않은 그림.
당초 예수님 성상의 기원은 “손으로 그리지 않은”(αχειροποιητος) 그림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교회는 도리어 손으로 그린 것들을 대량 생산해냈고, 급기야 그 그림을 통한 권력까지 양산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직하고 전수해야 할 유산은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분명 손으로 그리지 아니한 그림입니다. 

둘째, 손으로 지은 성전과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
또한 성서가 지적하고 있는 ‘손으로 지은’ 성전은 모든 세속성전을 지칭합니다. 반면 솔로몬 성전에 대비된 광야 이동 성소, 헤롯 성전에 대비된 예수님의 몸 성소, 이들은 그 세속성전들에 대한 개혁적 성소가치로서 궁극적으로는 하늘 성소를 표상합니다. 세속성전이란 실제 그 자체가 물리적으로 지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결격인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표상하지 못하는 요인들을 내재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셋째, 손으로 지은 법과 손으로 짓지 않은 법
이로써 우리는 ‘법’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최종적으로 수여받은 율법 판은 모세가 돌에 새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써주신 것은 모세가 깨뜨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렘 31:33)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돌 판에 손으로 새긴 법과 마음 판에 손으로 새기지 아니한 법, 이들 두 법의 차이를 예수께서는 돌 판에 적혀 있던 열 개 계명을 단 한 개 계명으로 축소하는 과정을 통해 증명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실 이 둘은 서로 양립될 수 없던 것인데도 예수께서는 사실상 이웃 사랑을 통해 그 나머지를 이룰 수 있다 하심으로 손으로 지은 법을 깨뜨리십니다.  

프린서플 | 손으로 지은 종교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종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그린 그림을 놓고서 자기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거나, 자기 손으로 성전을 지어 놓고서는 자기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법과 규칙들을 온통 자기들 손으로 지어놓고서도 자기들 손으로 지은 법이나 규칙이 아니라고들 곧잘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손으로 지은 종교 창설이 지니고 있는 제 1의 형식입니다.
* 이미지 출처:

http://annebender.blogspot.kr/2012/04/veronicas-veil.html
http://www.lib-art.com/art-prints/veronica.html
http://billdonaghy.wordpress.com/2008/03/20/passion-reflection-3-veronicas-veil/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