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세 개의 국적법

과거 우리나라 국적형성은 부계혈통주의로 결정되었다. 아버지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국적 취득이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부권중심 사회에서 모권으로 많이 이동되면서 모계만으로도 취득 가능하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국적취득이 가능하다. 이에 착안해 적잖은 사회지도층 가정에서 의도적으로 출산일에 맞춰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사례가 속출하기도 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임산부가 미국을 가다가 본토가 아닌 그 비행기 안에서 출산을 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비행기내 공간에 관한 국적 규정에 달려있을 것이다. 한국 공해면 한국이고 미국 공해면 미국일까? 국제조약은 이렇게 명시한다. “민간 항공기 국적은 비행기가 등록된 나라이다.”(국제민간항공협약 제 17조) 따라서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우리 국적 항공기를 타고 가다 태어난 아이라면 미국국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미국 항공기를 타고 가다 태어난 경우라면 미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는 여러 민족이 모여 국가를 이루는 시스템에서는 그 국적 형성도 영토개념에 준할 수밖에 없다는 이해로써 가늠해본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의 경우는 모계주의 사회로서 차라리 우리의 혈통주의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유대여성에게 여권이란 기대할 수 없었을 시절로부터 유래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모계주의는 어떤 국가/민족에 유례없는 독특함이 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의 기획결혼 이야기는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와 더불어 유대인들의 독특한 모계주의 전통을 잘 반영합니다. 무궁하고 광대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다른 무난한 이야기들이 많았을 것임에도 굳이 정경이라는 제한된 분량 속에 이 두 당혹스런 이야기가 할애되고 있는 것은 구속사 뼈대를 설명하고 증언하는데 있어 그들 이야기가 없어서는 안 되는 보(洑)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이야기를 관통하는 모계에 얽힌 계대결혼(혹은 수혼) 제도는 단순히 부권주의에서 분립하려는 여권의 풍속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 설립 단계로부터 결코 사멸되는 개체가문이 없도록 하려는 공동체 사상에서 비롯된 매우 독특한 정책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진정한 모티프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회생의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소멸, 돌아갈 곳에 관한 단계

먹고 사는 문제로 객지에 나갔으나 남편은 물론 아들들까지 잃은 나오미는 어떠한 회생의 기회도 상실한 처지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 공동체가 유지하고 있는 약자보호 전통에 거는 기대에서 입니다.

2) 기업, 생계에 관한 단계

고향에 돌아온 그들은 이삭줍기로 시작합니다. 구걸과 같은 행위였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비교적 법정적 전통입니다. 아예 곡식이 없는 기근이라면 모르지만 결실있는 추수 때는 흘린 것도 도로 줍지 못하도록 하고 밭모퉁이는 빈자를 위해 아예 베지 말고 남겨둘 것을 독력합니다(신 24:19: 레 23:22). 보아스가 그대로 실행합니다.

3) 고엘, 생명이 깃드는 것에 관한 단계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나오미 입장에서는 이삭이나 주우며 여생을 마치려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고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엘 즉 ‘기업 무를 자’가 갖는 의무는 단순한 생계유지를 넘어 토지뿐 아니라 멸문 될 그 가문의 복원까지 책임을 떠안는 자를 이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구현하시는 구속의 속성이며 우리 인간들의 경우는 기피하는 책무이기도 합니다.

에필로그 | 내가 계보를 형성하는가 계보가 나를 형성하는가

이와 같은 족보를 타고 다윗 왕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 모든 가계는 그것이 부계혈통 중심적이든 모계 중심적이든 아니면 영토 중심적이든 사회 계약적 틀을 벗어날 수 없지만, 구속사 상의 이 족보 순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도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소급되는 특성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 또한 가져볼 법합니다. 나는 어떠어떠한 계보를 형성하는가 아니면 어떠어떠한 계보에 의해서 내가 형성되는가.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 계보 중심선상에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이 계대혼, 수혼, 그리고 그것의 책임을 안고 있는 고엘의 제도가 갖는 기원의 핵심입니다.

[참고]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오벳은 보아스가 죽은 말론의 기업으로 물어준 것인데 어째서 오벳은 보아스의 가계로 들어온 것일까. 이에 대한 해명이 룻기의 최종적 이해다. 유대인들은 수혼(형사취수)이었던 유다/다말의 경우와 계대혼이었던 보아스/룻의 경우를 동치로 묶었다.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오벳이 베레스의 세계와 같아지는 것을 축복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4:11). <베레스의 세계>란 무엇인가? 베레스는 저지당한 수혼의 대체방법으로 생겨난 후손이다. 다말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계대가 된 것이었지만 이스라엘의 권위 있는 족보 학자들은 3남 셀라가 아닌 베레스를 유다의 상속자로 지목하고 있다(대상 2:3; 4;1; 마 1:3). 그는 어떤 구약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실혼’ 관계로 등재된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베레스의 세계>란 공동체 내에 멸문되는 개체가정이 없도록 배려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오게 된 독특한 항렬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베레스라는 이름 뜻 자체가 “터짐” 혹은 “갈라짐”인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족보상에서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독특한 항렬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맞물려 그 텔로스를 드러낸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그리스도는 사실상 생물학적 다윗 가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그 가계와 맺은 계약 속의 성취자로 항렬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베레스의 세계>와 존재의 형식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고엘이라는 본원적 의미는 이런 구조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룻기가 사사기와 사무엘상 중간 위치에서 역사서 목록에 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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