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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심청전의 서원기도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학규는 맹인이지만 양반이다. 부인 곽씨는 지성으로 불공을 드린 끝에 딸을 얻지만 애를 낳은 지 7일 만에 죽고 만다. 젖동냥으로 자란 딸 심청은 삯바느질로 아버지를 공양하는 효녀다. 어느 날, 아버지 심봉사는 귀가가 늦는 딸을 찾아 나섰다가 실족해 웅덩이에 빠지는 봉변을 당한다. 마침 지나던 몽은사 화주승이 그를 구해주며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하자, 심봉사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공양미 삼백 석을 서약한다. 가난한 형편에 약속을 후회하는 아버지 고민을 알게 된 심청은 인신제물을 구하러 다니던 남경 상인들에게 자신을 팔아 대가로 받은 공양미 삼백 석을 남기고 제물이 되기 위해 승선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버지 걱정을 하며 인당수로 뛰어든 심청은 바다 속에서 자신의 전생, 현세, 미래를 알게 되고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곽씨까지 만난 후 하늘과 바다의 선처로 연꽃에 담겨 돌아온다. 수면 위에 떠오른 이상한 연꽃은 남경 상인들이 돌아오던 길에 발견돼 송나라 천자에게 바쳐지고 천자는 연꽃 속에서 나온 심청을 아내로 맞이한다. 곧이어 황후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벌인다. 심청이 떠나고 난 뒤 뺑덕어멈과 살던 심봉사는 이 잔치 소문을 듣고 황성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상경한 심봉사는 잔치에서 황후가 된 심청을 만나 너무도 감격해 놀란 나머지 눈을 뜨게 된다. 
 도교, 불교 등으로 감싸인 이 이야기는 특히 불교의 보은사상으로 소개되며 널리 알려졌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반(反) 불교 목적을 두고 형성된 이야기이다. 
프린서플 | 서원기도 무효
심청전에는 두 번의 서원이 나옵니다. 심청이는 불공에 의해 태어났지만 또 다른 서원에 의해 죽습니다. 심청전, 이 이야기는 공양미 삼백 석이 그녀 가정에 어떠한 효험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화주승이 도리어 혹세무민으로 백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야기를 싸고 있는 불교‧도교‧유교 등, 종교들은 효(孝)를 차용만 했지 어떤 종교적 인과관계도 형성치 못합니다. 효는 원래부터 있는 것이지 종교로 가르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한 서원과 그렇지 않은 진정한 서원은 다음을 통해 가를 수 있습니다.


서원에는 목적물이 있습니다.
우선 전체의 삶을 서원할 수 있습니다(민 6:1-21). 나실인이라는 구별된 신분의 호칭은 당시에는 사제적  의미로 쓰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구별된 우리 삶 자체로서 보편화 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서원하기도 합니다(삼상 1:11-28). 한나가 맺은 아들 사무엘에 대한 약속이 그 예입니다. 또, 소유물에 대해 약속하기도 합니다. 야곱의 돌기둥이 그것입니다(창 28:22).

서원에는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신속히 드리며(신 23:21-22), 반드시 실행하며(신 23:23; 전 5:4, 5), 경솔하게 하지 말 것이며(잠 20:25), 흠 없는 것으로 드릴 것(잠 22:18-25)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원이 무효화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여성이 서원을 한 경우 양육의 책임이 있는 아버지가 듣고 부당할 때 무효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민 30:3-5). 또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했던 경솔한 서원에 대해서는 결혼 후 그 남편이 무효 시킬 수도 있습니다(30:6-8). 결혼한 후의 서원에 대해서도 (새) 남편이 무효화 할 수 있습니다(30:9-16). 이처럼 서원은 주로 구약 중심으로 편성되어 극히 남성/부권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만으로 서원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의 삶과 절대 주권자가 펼치는 역사가 서로 한 맥락을 이룰 때에만 진정한 의미와 효력을 띱니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삶이 행복을 찾고자하는 염원 속에서 서원을 형성하고, 또 그 배후에는 그 서원을 이끄는 강력한 어떤 힘이 존재하며, 마침내는 이들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 역사를 우리는 구별 지어 구속사라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난 것들은 모두 악으로부터 나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며 당시의 그 모든 그릇된 서원들을 무효화 시켰습니다(마 5:33-37). 

에필로그 | 심봉사의 서원과 우리의 서원
심청전 이야기가 종교적 혹세무민과 양반의 위선을 지적하는 것처럼 한나의 서원 기도 이야기가 한낱 무자한 여인의 한풀이 같은 정도의 서원으로 표방되고 있지만 그녀의 기도가 다른 점은 시대와 하나님의 경륜이 이미 왕을 구하는 궤도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고지합니다. 그녀의 성취 기도가 끝나자마자 그 시대 참상이 – 사제와 성소의 타락 중심으로 – 고발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서원이 심봉사의 서원 수준에 매여 있다면 그 화주승의 혹세무민과 같은 책임을 우리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이미지 출처:
http://www.animatoon.co.kr/soft/head_main_view.php?no=101&pinfo;=info7
http://www.newworldencyclopedia.org/entry/Samuel
http://eglewis.blogspot.kr/2011/12/tale-of-two-mothers-mary-and-hannah.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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