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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욥의 의(義)를 기점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조: http://www.mimoonchurch.com/159 ) 자신의 의를 과신하는 욥 하나와 – 패배주의적 신앙과 그것을 연결지었습니다 –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 그것은 주로 창조로 표현되었습니다 – 앞에서 회개함으로 오직 하나님의 의로 덧입은 욥이었습니다. 
오늘 이 본문(막 10:17-31)에 등장하는 ‘재물이 많은 사람’은 부자로서 재물이 많다는 점에서 욥과 닮았지만 계명을 다 지켰노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자의 욥과 많이 닮았습니다. 특히 그는 (1) 살인하지 말라, (2) 간음하지 말라, (3) 도둑질하지 말라, (4) 거짓 맹세하지 말라, (5) 속여 빼앗지 말라, (6)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과 계명을 잘 준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권고로 제시되고 있는 그것은 불교 같은 종교에서 말하는 어떤 무소유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구제의 질량을 무겁게 쌓으라는 주문도 아니며, 그 재물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가져오라는 요구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버리라”는 단순한 말로 압축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은 그로 하여금 “제자가 되어 따르라”는 말씀 즉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본문 상에서 우리는 재물 많은 이 사람을 포함하는 다음 세 부류의 제자군이 등장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첫째, 재물을 버리지 못하는 제자. 
이들은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까지 꿇으며,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버리고,” “따르라”고 했을 때 슬퍼하며 되돌아갔던 제자들입니다.
둘째, 수군거리는 제자.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을 듣고 서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수군거리는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셋째, 버리고 따르는 제자. 
반면에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해서만 예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로써 우리는 그 재물 많은 사람의 영생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재물 자체가 아니라 그 재물을 놔두고 따르지 못한 결단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생은 버렸다 다시 받는(λαμβάνω) 것에 포함되는 것이지 이 남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원 속에서 상속받는(κλερονομέω)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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