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이혼에 성공한 사람

이화여대 영문과를 3년만에 조기 졸업하고, 도미, 변호사 자격 취득, CA주(州) 검사에까지 임용되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녀 이면에서는 벗을 수 없는 고통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결혼 5년만의 이혼, 갑상선암, 망막 파손으로 인한 실명, 첫 남편과 사이에서 난 장남의 돌연사, 둘째 아들의 자폐아 판정까지, 이어령 전 장관의 딸 이민아 목사님의 삶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친의 회심이 있었고, 시력도 되찾고 갑상선암도 완치되는 이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호르몬 질병인 갑상선암엔 완치란 게 없지만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후 목사 안수도 받고 활발한 사역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그녀는 다시 위암 판정을 받습니다. 그녀가 죽기 한 달 전인 이듬해 2월15일자 인터뷰에서 그녀는 밝은 얼굴빛으로 지난 날 아들을 잃었던 곳 일본을 다시 여행한데 대한 이런 소회를 남겼습니다. 
“제가 이번에 놀란 것이, 회복이 있고 완전한 회복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3월15일 사망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와 이혼했던 첫 남편이 남긴 소회도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와 이혼 직후 소회를 책에다가 그는 이렇게 남겼습니다. 
“…결혼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anyway 미국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 지사장이 되었다.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 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여기서 우리는 이혼에 성공한 사람과 완전한 회복에 성공하는 사람, 두 사람을 목격합니다.
프린서플 | 지혜의 본성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5:15b)는 말씀과 같이 지혜는 우리의 세월, 즉 삶과 관련 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의 본성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와의 지혜. 
하와는 금제의 나무를 보고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창 3:6)고 여겼습니다. 그녀가 그 열매를 먹기도 전에 상상으로 갈망했던 그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행동으로써 다 나타납니다. 대다수가 금제의 경계선을 지키고 있는 동안, 담대하게 넘어가서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지혜로 규정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지혜.
근대에 들어서 예술보다 기술을 천시 여기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본래 ‘예술’은 기술에서 온 말입니다. 기술의 범주가 더 크고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설계를 보이셨을 때, 이것을 실물로 제작하려면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주도한 이들의 기술을 하나님께서 주신 영으로 그 지혜를 소개합니다.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지혜는 모세가 안수하여 자신의 사역을 승계 시킬 여호수아를 위해 구합니다(신 34:9). 그런가하면 미련한 여인과 대비된 슬기로운 여인에게도 이 지혜가 있습니다(잠 14:1). 우리에게 호크마로 알려진 지혜가 이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
솔로몬의 지혜는 앞의 두 지혜와 구별됩니다. 어떤 이성적 아이디어나 예술적재능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 혹은 “듣는 마음”이라는 표현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왕상 3:11b 부분을 직역하면 “재판을 듣고서 이해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재판 곧 심판은 어떤 원리로 실행됩니까? 법조문을 가지고서 하와의 이성적 지혜로 적용합니까? 아니면 법에 달통한 기술적 재능을 가지고 합니까? 솔로몬은 “듣고,” “이해”한 지혜로 심판을 했습니다. 오늘날의 법정이 이런 재판을 했다간 당장에 주관적 재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세월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 지혜를 가지고서 두 창기의 아이를 가르는 그 유명 재판을 주도합니다. 세 가지 지혜 중 가장 우월한 지혜입니다.

에필로그 | 완전한 회복에 성공한 사람
유대인들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지나가버린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바로 이 하나님의 지혜가 언제나 함께 한다고 믿었습니다. 욥기가 그 종말의 세월을 잘 반영합니다. 욥기에는 “지혜”로 번역될 수 있는 어휘가 약 35회 정도나 등장합니다. 어떤 때는 이성적 사칼로, 어떤 때는 호크마로…, 그러나 욥은 자신의 최후 종말에 가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하면서 그 종말을 솔로몬이 재판할 때 사용했던 “듣는 마음”에서 오는 깨달음으로서 지혜로 마무리 짓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지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우월한 지혜는 법도를 마지막 순간까지 충실하게 따르는 것일 텐데, 여기서  “법도”라 함은 어떤 성문 된 율법 내지 그 율법의 세부조항으로서라기 보다는 자신에게 불가항력적인 – 회피할 수 없는 – 삶의 장벽 내지 장애인 것이며, – 우리는 율법/법도를 지나치게 멀리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그것을 끝까지 완주하는 자들이 바로 이 지혜를 구사하는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민아 목사님이 남긴 말, “제가 이번에 놀란 것이, 회복이 있고 완전한 회복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에서 깨달음은 이 세 가지 중에 가장 우월한 세 번째 지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 본문, 엡 5:15-20.  (c.f. 왕상 2:10-12, 3;3-14; 시 111; 요 6: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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