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옴파로스
고대 희랍인들은 사물이나 환경에 인격을 붙여가며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가이아(대지)와 남편 우라노스(하늘), 그리고 아들 크로노스(시간), 하는 식의 신화입니다. 고대인들의 <시간>에 대한 깊은 통찰일까요? 시간 크로노스는 아버지격인 우라노스를 해하고 권좌에 오른 후 혹시 자신도 자기가 그런 것처럼 자기 자녀들에게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헤스티아, 데메테르, 하데스, 포세이돈…, 자녀들을 다 체내에 흡수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내 레아는 막내만큼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돌덩어리 하나를 보자기에 싸 내주고는 아이를 빼돌렸습니다. 그가 바로 제우스입니다. 제우스는 장성하여 시간(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11형제를 구해내 그 권좌에 올라 천체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희랍인들은 각 도시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델포이라는 곳에 와 점을 치곤했는데 그곳에 있는 돌 하나를 크로노스가 토할 당시 가장 먼저 튀어나왔던 돌, 즉 그 보자기 속 돌이라고 믿어서 입니다. 그 돌을 이름하여 옴파로스, 배꼽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것은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에 기인합니다. A.D. 390년경 데오도시우스 1세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고 이교도 금지령을 내림으로써 그곳을 찾아 점치는 일이 중단됩니다.
주님은 어느 장소로 다시 내려오시는가.
데카르트는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를 준비해서 발표를 하려다가 갈릴레이가 단죄되는 것을 보고는 이 논문 발표를 포기합니다. 당시 갈릴레이가 단죄를 당한 이유는 땅이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런 지동설을 주장한 것은 사실 갈릴레이만이 아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퍼져있는 지동설은 사람들의 사고 발달에 따른 개정된 이치였지만 세상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말씀에 입각하여 반석인 교황이 머무는 교회는 도무지 움직일 수 없는 중심이며, 만물이 이 반석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진리였습니다.
결국 테카르트와 갈릴레이 시대가 도래 하고야 말았지만 그 중심 권좌는 여전히 인간 차지였습니다. 중세시대의 반석은 하늘이 움직인다고 가르쳐 그 권좌를 찬탈했지만 데카르트의 후예들은 그 움직이지 않는 하늘과 움직이는 땅으로 이루어진 기계로서 세상, 그 이치로서 ‘세상’ 자체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자신들이 권좌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물의 중심은 오로지 교회, 교회가 바로 옴파로스입니다.
교회가 그 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엡 1:22-23).
주님은 머리가 되시며 교회는 그 분의 몸입니다. 세계는 그로 충만하며 모든 세계는 그 발아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문학적 표현이나 수사가 아니라 세상이 운영되는 실제 이치입니다. 에덴동산이 그 땅의 중심이었듯 노아의 방주도 모든 세상의 중심이었으며, 모세의 증거막이 구속사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상의 중심 곧, 옴파로스인 것입니다.
교회에 비밀 푸는 지혜(열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엡 1:17-19).
교회가 중심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이 비밀을 알고 있고 또 해석할 수 있는 열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해석의 지혜와 능력은 세상의 방법이나 이치 또는 학문으로는 축성 할 수 없는 은사입니다.
교회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요 17:6-19).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물 가운데 충만하셔서 만물을 사랑하시고 운영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보호되는 곳은 오로지 교회뿐입니다. 그분 보혈은 세상 물질의 권좌나 정치 권좌나 어떤 종교적 권좌를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분이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신 몸 된 교회에 그 효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보혈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보호받는 곳은 교회가 아닌 셈입니다.
옴파로스는 제우스의 성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태양마저 따라 움직였던 교황 권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지 않는 태양과 움직이는 지구로 이루어진 기계로서 과학 원리에 맺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오로지 교회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교회에 다시 하강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