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혀 죽는 자 (행 1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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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먹혀 죽는 자 (행 12:20-25)

 
 
매일묵상/ 2015년 9월 25일 금요일

본문: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사도행전 12:20-25

관찰:

1. 헤롯에게 신앙(하나님께 영광)을 기대해?
2. 흥황하여 더하더라

묵상:

3. 두 종류의 역사가 한 바퀴로 맞물려 돌아감을 묵상.

느낀점:

4.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공동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칭찬에 대하여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경계함.

결단과 적용:

5. 모든 게 하나님 것임을 망각하지 말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시간을 신뢰하다.

해설:

6. 신약성서에는 6명의 헤롯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헤롯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지지난 주 정도에 배경사로 배운 헤롯 아그립바 1세일 것이다. 역사 속에서는 급사를 한 듯 보이지만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사건을 극적으로 엮어 놓고 있다. 극적이라 함은 과장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들에 따른 진술 방식을 말한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헤롯이 어떤 박테리아에게 잠식 당해 죽었다” 라고 쓰지 않고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묘사했다. 최상의 영광을 입었지만 그는 고작 벌레에게 먹혀 죽는 존재임을 본 것이다. 이는 생생하게도 역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이 순간에도 벌레에 먹혀죽는 하찮은 우상의 영광을 은밀히 흠모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역사 진술에서는 뜻밖에도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한다는, 헤롯의 신앙에 대한 누가의 기대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헤롯-’ 하면 으레 이교도 정도로 생각하여,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것이기에 그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바로 역사를 두 개로 분리해서 봐 버릇 하는 우리의 착각이다. 헤롯(들)은 로마 총독들과는 달리 유대교 신앙 안에서(신앙을 등에 업고) 통치를 하던 자들이기 때문에 누가의 역사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그들을 당연히 도외시키지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의 관점에서 역사는 통전적인 것이다(구속사와 역사가 따로 돌지 않는). 이리 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취할 때마다 얼마든지 헤롯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열려 있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은 헤롯이 아닌 줄 알고 있지만.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에욱사넨’(ηὔξανεν/ 미완료) 즉, 계속 계속 그 흥황함이 진행되어감을 누가는 묘사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기도:

7. 나―영혼을 소성 시키소서
너―마음이 기쁘게 하소서
우리―눈을 밝게 하소서

cf. Lectionary, Thursday (September 24, 2015): Psalm 19:7-14; Exodus 18:13-27; Acts 4:13-31 OR Psalm 124; Esther 1:1-21; Acts 4: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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