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신약의 성도들이 부림절을 기념하는 방법에 대해 쓴 글이다.
매일묵상/ 2015년 9월 30일 수요일
본문: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ㅡ에스더 8:6-9
관찰:
1. 나무에 매달린 자 (7절)
2.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9절)
묵상:
3. 나무에 매달린 자가 누구인지를 묵상.
느낀점:
4. 나는 나무에 매달린 적이 없던가.
결단과 적용:
5. 겸손한 자 되기를.
해설:
6. 하만의 계략이 거꾸로 변하다 못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뒤집혀 심지어,
(모르드개가 받은)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ㅡ11절
유대인에게 까불면 유대인들로부터 재산도 탈취당하고 진멸까지 당할 정도로 역전이 되고 말았다.
유대인은 오늘 날도 부림절 절기마다 이 이야기를 읽고 기념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역사적인 그들의 삶은 녹록치가 않았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간 이들 유대인들은 이 역전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까? 더 이상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역전 같은 건 없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부림(주사위)의 진정한 역설을 발견하는데,
우리의 실존 세계에서 나무에 달린 자는 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ㅡ요한복음 19:19-20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ㅡ에스더 8:9
이것이 부림(주사위)에 담긴 의미의 원천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이스라엘이나 우리 자신은 이 부림절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가 앙갚음을 해주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나무에 바꿔 매다는 ‘하만’의 주술(Purim)을 건다.
그럴 때마다 이 부림절의 진정한 의미는 요원하기만 하다 할 것이다.
기도:
7. 나―내가 바로 나무에 달린 하만이었음을 회개
너―겸손하기를 기도
우리―부림(Purim)의 역사가 있게 하소서
cf. Lectionary, Wednesday (September 30, 2015): Psalm 5; Zechariah 10:1-12; Matthew 18:6-9 OR Psalm 140; Esther 8:1-17; Matthew 1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