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사태에 직면한 지난 열흘 간 내게 분별의 영으로 임했던 강력한 성령의 임재는 다음과 같다.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로 인해 그리스도에게 사람이 몰리자 대제사장 가야바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성서는 가야바 자신도 이게 뭘 뜻하는지도 모르고서 떠드는 장면이라 소개했다. 게다가 가야바는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까지 말한다.
기록자는 그 자체를 섭리의 언어라 한 것이다.
따라서 문창극 사태가 벌어졌을 때,
1. 우선 좋든 싫든 KBS를 통해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재단되어 내던져졌다. 이 말의 최초 발화자는 문창극이었지만 당사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생기(生起)하게 된 것이다. 가야바의 말이 그렇게 된 것처럼.
2. 이제 그 사건이 된(生起) 말이 우리를 갈라내기 시작하였다.
3. 즉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예외 없이 다음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4.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답을 하든지,
5.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답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Yes or No 할 때 우리 영혼은 우리가 한 대답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로고스 심판(크리마/ κρίμα)이 임한 것이다.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ㅡ요 11:46-52.
에필로그.
우리가 신앙할 때 어떤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고 어떤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골라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뺨을 때리고는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라고 묻는 ‘무리수’를 들여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는 하나님 앞에 항상 열려있는 게 아니라 닫히게 되고 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야웨'(I AM)가 아닌 ‘인샬라'(if Allah wills)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KBS는 자기의 할 일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유다에게 말하지 않던가?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13:27)
심판은 이로써 끝이 난 것이다.
* 필독: 문창극의 ‘하나님 뜻’이 기독교에 남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