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에게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주셨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 자신을 팔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아셨다면 어찌하여 “유다야! 너 그러지 마!”라며 말리지 않고 떡 조각을 주신 것일까? 방기인가, 유기인가?

본문: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ㅡ요한복음 13:21-30.

 관찰:

1. 조각을 적셔, 조각을 받은 후 (26*2, 27)
2.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30)

 묵상:

3. 우연히 저렇게 된 게 아니라, 조각을 받은 후 저리 된 연유에 관하여 묵상.

 인상:

4. ‘거사’를 위해서는 ‘조각’을 받는 (배)역 하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상을 받음.

해설:

5. 가룟 유다는 가룟 유다이기에 원래 그런 것이다 싶겠지만, 예수님의 행동이 미스테리 하게 전개 되는 것은 어쨌든 요한복음만의 특징이다. 다른 복음서보다 극적인 탓도 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릇에 함께 손을 넣는 정도의 암시로 그치지만(막 14:17-21; 마 26:20-25; cf. 눅 22:21-23), 위와 같이 요한복음 본문에서는 ‘조각’이 4회나 반복 기재되고 있다.

여기서 ‘조각’으로 번역된 프소미온(ψωμίον)이라는 말은 뜻밖에도 ‘선물’이란 의미도 있다.
선물? 유다에게 선물을?

그런 일반적인 선물의 의미라기보다는 일종의 미끼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르베루스의 먹이(Sop to Cerberus)라는 신화에 보면 이 선물로서의 ‘조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참고할 수 있다.

케르베루스(Κέρβερος)라고도 불리는 이 신화적 동물 세르베루스는 개다.
지옥의 개(hound of Hades).

가룟 유다
Heracles, wearing his characteristic lion-skin, club in right hand, leash in left, presenting a three-headed Cerberus, snakes coiling from his snouts, necks and front paws, to a frightened Eurystheus hiding in a giant pot. Caeretan hydria (c. 530 BC) from Caere (Louvre E701).

하데스 곧 지옥의 문을 지키는 이 무시무시한 개는 죽은 자의 영혼이 절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바로 그 지점, 하데스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개다.

머리가 세 개에다가 꼬리는 뱀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의 전쟁 영웅 아이네이아스(Aeneias)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하데스로 들어갈 때 안내자 시빌(Sybil)이 이 지옥의 개 세르베루스에게 수면제를 묻힌 먹이에 꿀을 발라 던져주고 그 곳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의 ‘조각을 적셔ㅡ’(26절)라는 말을 상기해보면,

한마디로 치명적 위험 인물 혹은 잔뜩 부어 터져 있는 사람 앞에 두는 조각을 이르는 말로, 그가 돌이킬 수 없는 자리로 들어선 단계를 상징한다.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이와 같은 진술로 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인간의 사사로운 계략으로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섭리와 경륜을 꿰뚫어 통찰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도치로 이해할 수 있다.

마음에 마비가 온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된다는 점에서
가룟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ㅡ”(요 13:27)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결단과 적용:

6. 이 조각을 받는 자가 벌이는 일은 이 시대 우리 안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기도:

7. 나― 마음이 마비되지 않게 하소서.
너― 깨닫게 하소서.
우리― 깨닫게 하소서.

※ 이 내용에 관한 보다 심층적인 의미는 다음 글 참조

성서일과, Wednesday of Holy Week (March 23, 2016): Isaiah 50:4-9a; Psalm 70; Hebrews 12:1-3; John 13: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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