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서에서는 세족식이 없다. 세족식은 왜 요한복음에만 있을까?

본문: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ㅡ요한복음 13:1-17.

관찰:

1. 유월절 전에 (1)
2.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묵상:

3. 세족식의 의미를 묵상함.

인상:

4. 세족식의 명(明)과 암(暗).

해설:

5. 세족식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단화다.
대신 요한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이 없다.

눈여겨 읽지 않은 독자 대부분이 이 세족식을 최후의 만찬으로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여기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없다.
가룟 유다에게도 ‘조각’을 “적셔” 줄 뿐 구체적으로 뭐에 적셨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세베루스 곧, 하데스의 개라고 했던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이 처럼 최후의 만찬이 없는 대신에 성만찬 제정 본문은 6장의 오병이어 본문 ‘만나’ 비유와 통합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와 요한복음의 가장 큰 구조적 차이는 ‘성전 정결’ 부분이 아주 앞쪽 2장에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워낙에 요한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파격적인 구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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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세 개의 복음서는 공히 예수님의 처형 원인을 바로 ‘성전 정결’ 행위로 지목하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그 사인(死因) 행위가 제일 앞쪽에 위치 되어 있는 까닭이다.
(실제 요한북음에서의 死因은 나사로 부활)

왜 요한복음에는 ‘성전 정결’ 행위가 앞쪽으로 가 있을까?
그것은 요한복음에만 ‘세족식’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전 정결’이란 괜히 어쩌다 우발적으로 나온 행위가 아니다.
이유가 있다.

요한복음 2장은 ‘성전 정결’ 본문을 띄우면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요한복음 2:13-14

즉, 유월절이라고 정보를 주고 있다.

자고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일은 무교절에 무교병을 먹는 유래와 마찬가지로, 유월절을 위한 준비의 하나다.
유월절을 맞기 위해 전통적으로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 부분 연결이 부족하지만 요한복음에서 이것을 선명하게 해놓고 있다.

그렇다면 세족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또 하나의 ‘성전정결’로 보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죽음이 한 번의 유월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명확히 두 번(째)의 유월절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당대 유대교의 성전정결은 2장에서,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성전 곧 교회의 정결은 13장에서, 세족식을 통해.

발을 닦아야 성전 바닥들이 깨끗할 것 아닌가.

결단과 적용:

6.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이 세족식 위임식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모두가 도망갔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 자신을 팔아먹는 자도 나왔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 모든 《최후의 만찬》 그림 가운데 아래 Jacopo Bassano의 <최후의 만찬>은 가장 현실적이라고 했던 것이다.

게으르고… 웅성거리고… 불평하고… 게다가 양 대가리 미신까지.

이들은 필경 발 씻김까지 다 받고 나서 저렇게 너절하게 널부러져 있다.

세족식
Jacopo Bassano, The Last Supper, 1542, Galleria Borghese, Rome

기도:

7. 나― 주의 성전을 깨끗게 할 힘을 주소서.
너― 주의 성전을 깨끗게 하소서.
우리― 주의 성전을 깨끗게 하소서.

Lectionary, Maundy Thursday (March 24, 2016): Exodus 12:1-4, (5-10), 11-14; Psalm 116:1-2, 12-19; 1 Corinthians 11:23-26; John 13:1-17, 31b-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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