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경계는 무슨…이미 늦었나? ‘역사 수정주의’다.

여기서 말하는 수정주의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라든지, “십일조 영웅 록펠러의 또 다른 실체” 라든지, “링컨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 아닌 노동시장 탈환” 등과 같이 과거에 배운 정명제(thesis)에 대한 반제(anti-thesis)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같은 수정주의 관점은 일찍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의식이 빈약했던 유럽 역사관을 바로잡는가 하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따위와 같은 이기적 표제를 바로잡는 긍정적 역량도 있기는 있었다. (이미 잉카와 아즈텍 문명이 그 땅에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신대륙’이라는 표현은 지극히 정복자 편향의 표현이라는 반성을 담아낸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없었음에도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어 의도적인 ‘준법’에 악용되었던 사례를 수정했는가 하면[아래 참고], 최근 우리나라의 기독교 개혁 세력은 십일조 영웅 록펠러가 과대 포장되었다면서 그 이면을 ― 그는 독과점, 노동자 유혈 탄압했던 악덕 기업주였다는 식으로 ― 폭로함으로써 교회가 십일조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에 관한 수정 행위는 과연 ‘악법만 법이 아니다’라고 해야 할 텐데, 그동안 마치 ‘모든 법이 법이 아닌 것’처럼 남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 마디로 법이란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는 (선택 가능한) 사회 계약 정도로 그 권위를 격하시키는 역사 인식에 악용되고 만 것이다.

[참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아무리 불합리한 법도 그 체계로서 지켜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소크라테스의 말로 각종 사회 교재에 소개되어 왔으나 2005년 경 일제히 개정되었다. 고려대 철학과 교수 한 사람과 서강대 정치학 교수 한 사람이 처음 공동 발제하여 반향을 얻은 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라는 책으로써 정점을 맞았는데, 2004년도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를 통해 초, 중, 고교 교과서에서 싹 다 삭제 되었다. 취지는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음에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법 집행에 악용되었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 격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Dura lex, sed lex)에서 온 말이다. 2세기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도 (이와 유사하게)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 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특히 저들의 헌법 소원은 엄밀한 의미에서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이 일본의 오다카 도모오가 자기 책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며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기록한 것에서(1930) 와전된 사실임을 밝혀낸 것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이같은 수정주의자들은 ‘기도하는 대통령,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든 대통령’이라는 링컨의 이미지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남북전쟁에서 순교하다시피 죽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아무런 의미 없는 죽음으로 욕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울러 십일조 역시, 십일조를 악용하는 몇몇 교회의 그릇된 가르침만 수정했어야 했는데 그 모든 십일조를 몰가치한 인위적 제도로 전락시키기고 말았다.
 

§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순교적 행위가 갖는 의미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록펠러가 노동자 탄압을 했다 하여 십일조의 본질까지 폐지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수정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설령 미국 남북전쟁이 노동시장 불균형 때문에 발발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점으로 ‘노예시장’이 사라지고 자유를 가치로 하는 ‘노동시장’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노예시장이 노동시장으로 변함으로써 노예는 자신의 노동을 매매에 부칠 자유가 생겼다). 자고로 역사란 이와 같이 공과 실이 고스란히 같이 보존되는 법이다.

공과 실을 모두 기록한 예시에 관한한 성서 기록만한 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공과 실이 명확하게 같이 기록되었다. 모세의 공과 실도 그러하며, 특히 다윗은 그 공죄가 혹독할 정도로 다뤄지고 있는 좋은 예시이다. 다윗의 과오는 역대기에서는 감춰졌으나 열왕기서에서 폭로됨으로써 역사로서 균형이 잡혔다. 반대로 말하면 죄가 드러났지만 공적 또한 기록된 것이다. ‘공적’이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역사 자신의 소유인 까닭이다.

수정주의에 의해 발생한 그 모든 폐해보다 심각한 것은, 이 수정주의 세대가 바로 자신들이 읽었던 동화까지도 수정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을 새로 태어난 다음 세대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도 널리 읽힌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원래는’ 계모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오누이가 아니라 살인자 오누이였다. 제과 기술자였던 한 여성에게서(동화에서는 마녀로 나옴) 조리 비법을 빼앗기 위해서 그 여성을 살해한 것이 ‘원래의’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청순의 대명사 <백설공주>가 있다. 이 백설공주 역시 ‘원래는’ 친부와 간음하고 일곱 난장이와 놀아난 간부의 이야기다. 그리고 <신데렐라>의 언니는 유리 구두를 신기위해 발뒤꿈치를 잘라냈는데 역시 ‘원래의’ 이야기에만 나온다. 이 같은 수정 행위가 10-20대에게서 한동안 유행을 했다. 이는 우연한 유행이 아니라 앞서 수정주의자들이 유포한 인식으로 인한 필연적인 여파였다.

과연 우리가 읽은 동화들의 ‘원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말로 그렇게 그리스 신화처럼 잔혹과 에로티시즘의 파국이었을까? 혹시 수정본이 더 ‘원래의’ 모습은 아닐까? 왜냐하면 자고로 텍스트란 오랜 시간이 흐르고 흘렀을 때에, 바라본 모습이야말로 보다 명확한 의미를 산출하는 원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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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어투에 따르면, 그것은 언제나 ‘원래는…그게 아니라…’ 이다. 이를 테면, 분당의 어떤 학교의 선생님 한 분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치시길, ‘원래는’ 세월호 시신들을 정부가 죄다 숨겨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관련 기사)

역사 수정주의의 폐해는 동화를 현실로 바꾸는 과정에 전이된다. 지금 당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현실을 좀먹는 악성 동화의 양상으로 틀림없이 나타나고야 만다는 사실이다.

이런 수정주의에 매몰된 사람이 기독교인인 경우에는 성경도 그런 방식으로 좀먹게 되어 있다.

동화를 현실로,
현실을 동화로.

우리의 모든 동화를 악성 동화로 전복시키고 있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

 
다음 동화는 <헨젤과 그레텔>의 편찬자인 그림(Grimm) 형제가 순화시킨 동화의 원래의 내용이라고 한다. 한 번 읽어 보시라.
 
Hansel and Gretel by w:Arthur Rackham. Publication: Grimm, Jacob and Wilhelm. The Fairy Tales of the Brothers Grimm. Mrs. Edgar Lucas, translator. Arthur Rackham, illustrator. London: Constable & Company Ltd, 1909.
 

한스와 그레텔(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 나오는 ‘빵 굽는 마녀’의 본명은 카타리나 슈라더린이었다. 하르츠 지방 베르니게로더 출신인 카타리나는 16세 때 크베들린부르크 수도원장의 하녀로 들어가 1638년까지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다. 그리고 렙쿠헌이라고 부르는 후추 과자를 발명하였다. 그녀는 남부 독일의 시장에다가 렙쿠헌을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과자의 비법을 탐낸 위세 있는 한 궁정 제빵사 한스 메츨러(Hans Metzler, 당시 37세)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그러나 속셈을 알아차린 그녀는 끈질긴 구애를 거절하고 제빵기구들을 갖고 1647년경 야반도주했다. 그녀는 슈페스아르트의 엥겔스베르그 야산 어느 집에 은신했다. 비어 있던 작은 목조 가옥을 사서 보수하고 개조해 4개의 빵 화덕을 새로 건립했다. 렙쿠헌 과자의 새 버전을 시장에 내놓고 호평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과자들도 발명했다. 새로운 그녀의 명성이 다시 한스 메츨러를 자극했다. 그는 그녀를 시 재판소에 마녀라고 고발했다. 그녀에 대한 심문은 1647년 7월 15일 겔른하우젠(Gelnhausen)에서 실제로 열렸다. 고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해 풀려나자 1647년 7월 하순경, 한스 메츨러는 여동생 그레텔 메츨러(34)와 함께 카타리나를 찾아 엥겔스베르크 숲을 찾아갔고 거기서 그녀를 목졸라 살해했다. 그리고는 렙쿠헌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집 안을 샅샅이 찾았지만 실패했다. 카타리나를 죽음으로 이끈 비법은 1962년 그 집의 벽 밑 비밀 장소에서 김나지움 교사 게오르크 오세그에 의해 비로소 발견되었다고 한다. 살인 용의자로 의심받던 한스와 그레텔 두 범인이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무죄 석방되었다. 그리고 한스 메츨러는 뉘른베르크의 시의회 의원으로 2년간 재직하다 1660년 저명인사로 사망했다.

 
아래 동화 그림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원래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맥주 광고에 사용된 것인데 한 번 감상하시라. 이같은 동화에서 어떤 현실이 도래할지. 이미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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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 White and the Seven Dwarves’ beer advert angers Disney
 
 
에필로그.
 
역사에 대한 수정 행위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 또는 까다로운 상관의 명령을 전복시킬 때 주로 나타나는 기법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가 훼손된다.

* 2014년 5월 11일 부활절 제4주 | 까다로운 자에게도 그리하라 | 벧전 2:18-25. (cf. 행 2:42-47; 시 23; 요 10:1-10.)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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