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나라 온 동네 구석구석을 언젠가는 빠짐없이 다 밟겠지…?’
어려서 지형 감각이 모자라서 그랬다기보다는 어린 마음에 살 날이 많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정말로 전국의 골목을 다 가볼 줄 알았는데 천안에서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는데도 이 지역 안 가본 골목이 더 많다.
내가 우리나라를 학교 축구장 정도로 여길 적부터 나의 선친께서는 꼭 1회용 면도기를 사용해오셨다. 1회용 면도기를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그걸로 여러 번을 쓰셨다. 다른 고급 면도기를 사용할 법한 데도 꼭 1회용 면도기, 그것도 Bic사 제품만 애용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해외에서 들어오면서 1회용 면도기를 왕창 사다드렸다. 백화점 쇼핑백 크기로 한 가득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꼭 강철 금고에 쟁여 넣고 사용하셨다. 금고 안에는 돈이 수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면도기가 언제나 수북이 있었다. 선물 받은 그것을 금고에 넣으면서 기쁘셨는지 “이거 내가 죽을 때까지 써도 다 못써ㅡ” 하셨다.
곁에 있던 나는, “에이~ 뭔 말이셔~~” 하면서도,
어릴 적 전국 골목골목을 다 밟을 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이 중첩되면서..,
1회용 면도기의 양이 지나치게 많았거나,
아버지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아졌거나-.
내 생애가 속히 줄어든 것이거나,
길(a way)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거나-.
그 1회용 면도기 보따리는 약 5년 전에서야 내가 다 써서 끝을냈다.
아버지는 그보다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바울은 말하기를 “세상 물건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고전 7:31)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세상 외형이 다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외형은 패션이다. 패션이 빠져버리면 우리는 한낱 입김과 같은 존재이다(시 62:9).
한낱 입김과 같은 존재로서 ‘나’가 우리 영혼 본연의 모습이다.
바로 이 가벼운 ‘입김’으로 천국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 2015.1.25. 주현절 후 제3주 |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 성서일과, 고전 7:29-31; 막 1:14-20 (cf. 요나 3:1-5, 10; 시 6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