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I. 제4복음서에 대한 도발(挑發)
    II. 영지주의에 대한 도착(倒着)
    III. 마르시온에 대한 애착(愛着)
    IV. 도올의 사이비 복음, 큐(Q)복음서

이 글은 도올 김용옥 교수가 그동안 사회에 유포해온 사이비 기독교의 폐해를 통감하고, 그 중에서도 그의 복음서 이해에 나타난 이단성을 알리고자 구성한 글이다. 텍스트에 관한 이단성이 그의 모든 사이비성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지금부터 약 12년 전 EBS 방송에서 기독교에 대한 도발을 일으킨 바 있다. 구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같다면서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이 사태는 수개월 후 한 기독교 학회와의 만남을 가져왔다. 감신대에서 개최된 한국조직신학회(당시 회장 이정배)에 그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도올은 다소 한 발 물러선 듯한 입장으로, ‘율법주의’를 거부했을 뿐 ‘율법’에는 거부하지 않았다며 논란을 회피하는 인상을 주었다. 자신은 구약의 가치를 거부한 적이 없는데 폐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되었다면서 “나는 단지 신약과 동떨어진 구약을 기독교인들에게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것, 오로지 그것 하나를 주장한 것”이라 해명했다.

김경재 교수.

당시 그 만남은 TV 강연에서의 논란이 계기가 된 만남이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그가 발간한 두 권의 책, <기독교성서의 이해>와 <요한복음 강해>에 대한 기독교계의 공식 반응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는 말하기를 “도올이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책을 정독해보니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을 찾지 못했다.”면서 도올은 “율법주의, 권위주의의 해독(害毒)을 강력하게 경고한 것이지 구약을 폐기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며 도올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그로부터 7년 전 도올이 이미 KBS TV 강연에서 “예수는 사생아일 가능성이 있다”고 도발한 것에 비하면 가히 고해성사 수준이라 할 만하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면죄부(免罪符)를 내준 격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애초에 도올의 구약 폐지론은 단순 율법주의에 대한 반성을 넘어 구약성서에 대한 전면 폐지로 이어져 있음이, 복음서에 관한 도올의 이해 속에서 자명한 이단성으로 환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은 김경재 교수의 증언과는 달리 당시에 이미 출간된 상태였던 그의 저서에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구약폐지론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 글의 II부와 III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먼저 구약 폐지론의 중심 전거로 활용되고 있는 요한복음에 대한 도올의 자의적 해석을 ‘제4복음서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그 배후에는 그동안 그가 도처에 도배하다시피 해온 ‘영지주의에 대한 도착’이, 그리고 더 나아가 ‘마르시온에 대한 애착’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결국 이 모든 전개가 ‘도올의 사이비 복음서, 큐(Q)복음서’에 대한 이단성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규명함으로써 교계에 그에 상응한 치리를 촉구할 것이다.

I. 제4복음서에 대한 도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요한복음서에 대한 도발은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1) 유대교 이탈론, 2) 헤라클레이토스식 로고스론, 3) 영지주의 복음서론이다.

첫째, 도올은 요한복음서를 유대교에서 완전히 이탈한 복음서라는 도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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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 요한복음서를 유대교에서 분리된 복음서로 보는 대표적인 이유는 요한복음서에서의 유대인(the Jew)이라는 호칭이 기독교인과 완전히 구분되어, 저주 받는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요 1:11)는 대목도 일종의 그런 지역적 의미의 진술로 규정했다. 요한복음서 전체를 통해 ‘유대인’이라는 호칭은 예수의 적대자 집단으로서 예수 자신의 삶뿐 아니라 그것을 읽는 우리의 삶에서까지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도올은 요한복음 속 예수를 이미 과거사를 넘은 영원한 현재의 인물(the eternal Contemporary)로 관념화해버리는 억측으로 일관했는데, 결국 이러한 오독이 요한복음 저자와 청중을 유대교와 전혀 관련 없는 집단으로 오인하는 편견을 불러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반 유대교(혹은 비 유대교) 전선의 동력이 물리적 유대교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시기를 보통 AD 70년경 이후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것은 유대교 전통의 거점인 예루살렘이 그 시기를 끝으로 완전히 소멸된 까닭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라졌다 해서 도올의 말처럼 완전히 유대교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올이 요한복음의 저작 연대로 꼽는 AD 100년경의 기독교는 여전히 유대교와의 경쟁 관계 속에 생존을 모색하던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기독교를 말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함에 따라 그 영향력이 쇠퇴해진 유대교 색채의 기독교(Jewish Christian)는 점차 이방 기독교인(Gentile Christian)에게 주도권이 넘어가지만, 복음 전파의 일차적인 대상은 여전히 제국 전역의 유대인들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이방인의 영토에서 이방인의 지배를 받게 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의 복음을 구약 유대교의 완성으로 소개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했던 것, 그것이 바로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다.

요한복음에서의 ‘유대인’이 유독 적대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 저자(또는 독자) 공동체가 유대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 약속의 동질성에 기반한 유대인임에도 배타적 태도로 일관했던 특유의 정체성에 기인한다. 이를 테면 우물가에 나온 사마리아 여인의 입장에서 예수는 ‘유대인’이었으며(요 4:9),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 패에 적힌 ‘유대인의 왕’이란 글귀가 유대인이 보기에는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 3개 국어(세계어)로 기재되었다(요 19:19-20). 이는 결국 사마리아인으로 하여금 “세계의 구주가 유대에서 나왔다”는 고백을 하게 하는 전거가 된 원리이다(요 4:22b, 42). 요한복음 공동체가 직면한 그런 상황과 신학이 다음과 같은 선언도 낳은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도다”(요 1:11)

둘째, 도올은 요한복음의 로고스를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론과 동일시한다.

이는 로고스론을 그리스의 상식적인 로고스로 전락시킨 도발에 해당한다. 요한복음의 로고스 신학은 기독론이어야 하는데 사변적 로고스 범주에 매몰시킨 결과이다. 도올이 로고스론의 시금석으로 여기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 도입부이다.

“내가 아무리 말씀(Logos)에 관하여 기술을 하여도 사람들은 항상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씀을 듣기 전이나, 말씀을 들을 때조차도 똑같이 말씀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만물이 이 말씀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말씀에 관한 체험이 없다. 내가 설명하는 대로 말과 행위를 체험하고 있을 때에도, 내가 만물을 그 구성에 따라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분별시켜주어도 사람들은 말씀에 무지한 듯하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고 있는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를 망각하는 것처럼 눈뜨고 있을 동안에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Diel-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의 번호. Fr. 1.)

젊은 아인슈타인

요한복음의 초입 부분이 연상되는 이러한 논지는 마치 요한이 차용해오기라도 한 것처럼 도올로 하여금 고무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을 마치 자신의 경이로운 발견처럼 소개한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당대의 상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도올은 이 상식의 원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관념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 호소를 위해 들여온 예시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물리학의 천재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이라는 혁명적 발견을 이루었지만 역사적 인물로서의 아인슈타인에게 의미가 없다는 전제이다. 아인슈타인의 수리적 사유가 본래 이미 존재했던 로고스였다는 것이다(상대성이론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점을 유의할 것). 도올은 이것이 일종의 하나님 ‘말씀’이라 합성한다. 그런 전제 속에서 그 ‘말씀’(상대성이론)이 역사적 인물로서의 아인슈타인으로 육화(肉化, Incarnation)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다. 로고스는 이어서 그 상대성이론이라는 말씀을 인간 세계에 남겨놓고는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주된 관심사는 이런 ‘상식으로서의 로고스’가 아니라 ‘기독론으로서의 로고스’였다. 요한복음이 그 상식을 부인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상식과 구약 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곧 ‘로고스 기독론’이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헬라의 상식적인 이성 체계로서 로고스를 구사할 줄 아는 유대교 문필가라면, 그것은 단순히 도올식의 ‘상대성이론’으로서 로고스가 아니라, ‘인격으로서 로고스’를 어떤 방식으로 나타낼 지가 주된 관심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지혜와 더불어 태초로부터 주의 말씀이 하늘들과 땅을 만드시고 완성시켰다…그리고 주의 말씀이 말했다: 그의 말씀의 포고에 따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Martin McNamara, The Targum Neofiti 1: Genesis (Collegeville, Minn: Liturgical Press, 1992), 56.

이는 고대 유대교 전통의 수많은 탈굼 가운데 1세기 작품으로 알려진 탈굼 네오피티(Targum Neofiti)의 창세기 초반부 한 대목이다. 그리스 상식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러한 유대교 전통 문헌상의 관심은 ‘그리스 전통이냐 유대교 전통이냐’는 식의 관심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우주 창조와 계시에 어떠한 방식으로 참여했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는 사실을 유의할 것이다. 여기서 ‘말씀의 참여’(Word’s participation)는 심지어 ‘하나님’조차 ‘말씀’에 선행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말씀 신학’을 로고스 기독론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작법은 도올의 말과는 달리 결코 그리스의 상식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분명 그것이 유대교 경전의 전통을 헬라문화의 상식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다음 본문의 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명기 서막의 구조이다. 한글 본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흐름을 원문에 맞추어 재구성하면 이렇다.

모세. 상파뉴 필립 드 作

모세가 하는 행위도 말씀(동사 ‘다바르’)이지만 이미 그 이전에 주어진 말씀(명사 ‘다바림’)이 있었다. 모세의 말로 전했던 구약의 하나님 말씀은 선재했으며, 그리고 호렙산에서 말씀과의 대면은 이 토라 공동체 이스라엘에게는 화육(Incarnation)과도 같은 ‘내려오심’의 체험이었다. 다바르(“말씀하다”)라는 동사가 신성한 하나님의 언명을 주도하고 있지만 다바림(“말씀”)이라는 명사로서 로고스를 넘어서지 않는 운율인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구현하고자 한 로고스 형식의 모범(원형)이다. 즉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내려온 ‘상대성원리’가 아니라, 구약에서의 창조 로고스로서의 말씀이 신약에서의 ‘인격 로고스’로 내려온 발화(發話) 지점을 표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서막과 신명기 서막 간의 도상에 드러난 히브리어 다바르와 희랍어 로고스의 정체는 집중적이고도 분산적인 것이다.

헤브라이즘에서 헬레니즘으로 집중되고 분산적인 ‘말씀’이 그 동기와 실천, 지성과 사고를 지닌 독립된 주체로서 살아 숨 쉬는 것, 그리고 그 인격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이와 같은 문어(written language)와 구어(spoken language)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요한복음 로고스의 진수인 것이다. 그렇기에 로고스의 수많은 번역어 가운데 가장 진정한 의미는 ‘비율’(Λόγος)이다.

요한복음의 로고스가 헤라클레이토스의 지역적 로고스라는 사변적 이해는 구약성서를 거부하는 도올과 같은 세계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이해일 것이다.

셋째는, 요한복음이 영지주의 복음서라는 도발이다.

도올이 기독교를 영지주의에 접목할 때 저지르는 전반적인 문제점은 다음 장에서 다룰것이므로 여기서는 도올이 요한복음을 영지주의 복음서라 주장하는 논거만 간략히 비평한다.

헤겔과 마르크스

도올은 요한복음이 영지주의가 아닌 영지주의에 대항한 반(反) 영지주의 문헌이라 결론을 내린 전통적인 요한복음 연구자들의 고찰들을 매우 구태의연한 모범답안 취급을 하고 자신은 다분히 변증법적인 공략을 구사한다. 이를 테면 요한복음이 반 영지주의 문헌이었다는 전통적 주장은 마치 “칼 마르크스가 헤겔의 유심론체계에 반대하여 유물론체계를 수립하였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는 식의 논변이다.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이 헤겔의 유심론에는 반할지 모르지만 양자는 공통의 변증법 구조와 공통된 발전사관구조에 포섭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한복음이 반 영지주의 문헌이라 하여도 그 세계관은 어차피 영지주의 범주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사관 구조는 요한복음이 영지주의뿐 아니라 유대교 복음서라는 사실에도 종사한다는 점을 도올은 간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올의 주장처럼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와 발전사관 구조로 묶여 있다면, 상대적으로 유대교 전통 역시 공통된 발전사관 구조에 포섭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설명한 로고스를 통해 다바르를 구현하고자 한 요한복음의 노력은 이런 발전사관 구조의 대표적인 적용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서 서막의 ‘태초에’, ‘화육’(化肉), ‘7가지 표적’(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나사로의 소생에 이르는) 등은 모두 그 같은 헬레니즘의 발전사관 속에 포섭되는 구약성서의 주요 개념들의 재연이다.

우선 화육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 1:14)는 도올이 강한 혐오로 일관하는 구약의 하나님으로부터 산 위에서 받은 오경 ‘말씀’이 평지의 ‘천막’으로 내려온 것에 대한 모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가나의 혼인 잔치는 모세가 이집트의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이면서 시작한 열 가지 표적 프로그램에 대응한 첫 번째 표적이다. 마찬가지로 나사로의 부활은 이집트의 장자들을 죽인 야웨의 마지막 표적을 지향하는 요한복음서 상 일곱 가지 표적 프로그램 중 마지막 표적에 해당한다. 10이 7로 변환된 것이다. 10에서 7로의 이 상수의 변환은 구약 율법에서 영지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이 영지주의 세계에서도 계속된다는 표지이다.

그럼에도 도올의 편중된 영지주의 사관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영주지주의에 대한 도착에 따른 것이다.

II. 영지주의에 대한 도착(倒錯)

도올이 구사하는 영지주의 사관을 요약하면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영지주의 보편론, 2) 영지주의 색깔론, 3) 영지주의 구원론이다. 하나씩 살펴보겠다.

첫째, 도올은 2세기 세계관의 다양성을 지나친 영지주의 보편론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2세기 초 혼합주의를 모종의 지적인 분위기로 전제한 도올은 초기 기독교가 영지주의 기독교라 해도 될 만큼 헬라세계의 종교였다고 단정한다. 그런 지적 분위기에서 정통 기독교가 어떻게 성립하여 갔는지를 살펴야한다는 명분은 결국 전혀 다른 유사 기독교를 마치 정통인양 소개하고, 정작 전통의 교리는 해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문맥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일례를 들면 지혜문학, 묵시문학, 그리고 쿰란공동체에서 나타나는 명백한 이원론적 세계관: 진리의 영과 불의의 영, 악한 영과 선한 영, 의인과 악인, 빛과 어둠, 자유의지와 예정론,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의 전쟁, 최후의 심판, 메시아사상, 부활사상, 그리고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 종교사상, 그리고 이집트의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컬트와 그의 핍박자 세트(Seth), 그리고 희랍의 헤르메스(Hermes)와 동일시된 토트(Thoth)숭배, 그리고 희랍의 토속신앙인 디오니소스축제, 그리고 오르페우스종교, 그리고 그 영향권에서 성립한 플라토니즘의 이원론, 그리고 그것이 다시 개화한 네오플라토니즘의 유출론적 세계관, 그리고 견유학파(Cynics)의 초세간주의, 스토아철학의 금욕주의, 에피큐리아니즘의 쾌락주의, 회의주의학파의 반지성주의적 경향성, 그리고 근동/중동에 배어있던 인도문명적 사유의 실마리들, 이모든 것이 구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2세기초의 이러한 자유로운 지적 분위기를 우리는 총괄하여 그노스티시즘(Gnosticism) 즉 영지주의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 정통 혼합물에 대한 보편론은 일종의 전략과도 같아 보인다. 이 일반화에 매몰된 사관을 도올은 전통의 논점을 해체시키는데 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문명이나 문화가 거대한 사조 아래 산란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 혼합현상을 자유로운 지적 분위기였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문외한적인 역사관이다.

가령 도올이 선호하는 불교를 예로 들면, 조선시대에는 7종이었던 불교 종파가 일제시대에는 지역 사찰 중심의 31 본산(三十一本山) 체제였다가 1962년이 되어서야 한국식 조계종이 발족되고 그 이후 대한불교 천태종, 진각종 등 18종의 신흥 종파와 아울러 신흥불교인 원불교도 성립되었다. 이 100년 상간의 종교적 분위기를 가리켜 자유로운 ‘불교주의’(또는 ‘대한불교주의’)라 할 수 있을까? 조선 억불정책 아래에서의 불교, 일제 무단통치 아래에서의 불교, 모두 각기의 다른 의미를 갖듯이 유대교도 마찬가지이고, 영지주의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2세기의 기독교라는 것은 혼재된 그 사조들 속에서 옛 약속의 성취와 완성을 증언하는 결정체였지, 어떤 과정체가 아니었다. 혼합주의를 개방적인 정체성 양상으로 보는 이런 역사관은 발전사관의 한계라 할 수 있다.

둘째, 도올은 ‘영지주의 색깔론’을 활용해 영지주의를 옹호한다.

색깔론이란 반대하는 이념에 대한 혐오를 색으로 상징하는 논리이다. 상기와 같은 일반화의 오류에도, 도올은 말하기를 “우리사회의 주류적 흐름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반하는 사상은 무조건 ‘빨갱이사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면서 마찬가지로 초기기독교사에 있어서 소위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것은 이 “빨갱이사상”의 논리였다고, 앞서 영지주의 일반화를 강화한다. 그러면서 “마르크시즘이나 콤뮤니즘이라는 어떤 치열한 사상체계나 정밀한 논리와는 전혀 무관하게 빨갱이사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즉 ‘마르크시즘이나 콤뮤니즘(공산주의)’은 치열한 사상체계이고, 그것을 경계하는 체제는 일종의 ‘색깔론’이라는 주장이다.

역사적 마르크시즘이나 공산주의는 대개 이 색깔론이라는 엄폐물 아래서 그 외연을 확장했듯이 ‘영지주의라는 빨갱이 논리’(도올의 표현)는 도올의 영지주의 외연 확장의 논리이다. 그 빨갱이 사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으나 분명히 밝혀줄 수 있다. 그것은 영지주의식 구원의 길이었다.

카밀 플라마리옹 ‘천체역학’ 일러스트레이션 (1888)

셋째, 도올이 예찬하는 영지주의적 구원은 파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지주의의 위험성이 1세기 초대기독교에서부터 대두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떤 종파적 집단이나 철학 사상의 조직이 아니며, 이렇다 할 실체가 없는 거대한 운동이었다. 이러한 사조가 유대교와 결탁한 것은 어디까지나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멸망한데 따른 반동에서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은 ‘영지주의 기독교’가 아니라, ‘영지주의 유대교’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영지주의를 뜻하는 영문 Gnosticism은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그노시스(γνῶσις)에서 온 말이다. 이는 모종의 특별한 지식의 신비를 일컫는다. 그 지식은 진정한 이해를 추구하는 자를 위해 마련된 지식이었다.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비밀의 지식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열쇠였다.

이와 같이 고대 영지주의는 도올이 말한 것 같은 어떤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다. 명백한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적 운동이었다. 구원이야말로 영지주의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물질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고 실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정의했는데 그러한 이해를 인간에게 적용할 때 인간은 언제나 몸 안에 갇힌 영원한 비물질이었다. 그래서 영지주의에서 몸이란 영혼의 감옥이요 참된 본성을 망가뜨리는 악이었다. 몸과 물질을 이 같이 악한 것으로 가정했기에 이에 경도된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몸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몸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몸은 유령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인간 이해, 그리스도 이해가 바로 도올이 개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던 자유로운 지적 분위기의 기독교였다.

영지주의는 세상의 기원에 관한 가르침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늘어놨다. 태초에 신은 물질세계가 아닌 영적인 세계만을 창조하려던 것이었으나 창조의 과정에 많은 영적 존재들이 발생하게 되었고, 여기서 생성된 이온들 중 하나가 고립되어 오류에 빠짐으로써 이것이 물질세계를 창조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온들 중의 하나인 ‘지혜’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산하기를 원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유산’(流産)을 하고 만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닌 우연한 ‘유산’(abortion)의 결과였다. 사이비 플라톤 사상과도 같은 이 사상은 이와 같이 창조와 성육신과 부활의 왜곡을 가져왔기 때문에 2세기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온통 심각한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도올의 ‘영지주의에 대한 도착’이라는 표제는 결코 지나친 게 아니다. 이와 같은 영지주의에 기독교의 이름으로 찬사를 보내는 도올의 세계관은 영지주의에 대한 도착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착은 그럼에도 도올의 직접적 사상은 아니다. 그는 이러한 지적 분위기로 전통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을 기대에 기여할 뿐, 도올의 기독교를 형성한 모형은 따로 있었다. 영지주의라는 모판 속에서 영지주의와 더불어서 초대교회에 강력한 위협을 가했던 존재가 있었으니 그를 우리가 마르시온이라 부른다.

III. 마르시온에 대한 애착(愛着)

영지주의는 실체가 없는 문화 전역에 퍼진 운동이었지만 마르시온은 보다 조직적인 세력으로서 영지주의와는 또 다른 국면의 위기를 몰고 왔다. 지금 이 글에서 도올과 마르시온과의 관계를 애착으로 규정해, 그의 영지주의와의 관계를 구별 짓는 것은 도올의 기독교세계관은 그 시작과 끝이 마르시온과 똑같기 때문이다. 도올의 글 면면에 마르시온에 대한 애정이 배어나는 이유일 것이다. 도올과 마르시온의 유사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1) 구약 페지론, 2) 심판주 유패론, 3) 자의적인 성경관을 들 수 있다.

첫째, 도올의 구약 폐지론은 마르시온에게서 온 것이다.

마르시온은 우리가 읽는 성서에서 ‘본도’로 알려진 ‘폰투스’ 지방의 흑해 남부 해안에 위치한 상업도시 시노페에서 태어난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대해 잘 알았다. 교회 감독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대교에 대한 반감과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굳어져갔다. 그리하여 지극히 반유대교적이면서도 반물질적인 기독교 이해를 발전시켰다. 물질세계의 실물들이 전통에서 교육받던 대부분의 근본적인 요목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던 까닭이다. 이러한 그의 결론이 전통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직접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리하여 마르시온은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결론을 발전시킬 수가 있었는데 눈에 보이는 세계는 악한 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혀갔고, 그 이유는 세상을 지은 창조주가 악하거나 무지해서 그렇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회의주의는 영지주의와 비슷했으나 그는 영지주의자들처럼 일련의 영적 존재나 세계를 따로 가정하지 않고 보다 손쉬운 해결책을 마련하였다. 예수의 아버지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 여호와와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도올 김용옥 교수도 마르시온의 어린 시절 만큼이나 어려서부터 기독교를 잘 알고 있었다. 알았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고 신학대학에 들어 갈 때는 성인세례도 다시 받았던 전력이 있다. 많은 기독교인이 안 믿고 싶겠지만 신학대학에는 목사가 되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어찌하여 기독교 전통의 모든 면에서 역행하는 주장들을 쏟아내게 되었을까. 어찌하여 마르시온처럼 반감어린 지성을 기독교에 쏟아 붓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KBS TV에서 <도올의 논어 이야기> 시리즈를 강연하면서 도올 김용옥 교수는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밝힌 일이 있다. 그것을 듣다보면 왜 마르시온의 전통에 애착을 보이게 되었는지 다소 이해될 법하다. 다소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겠다.

안병무 박사(1922-96)

“저는 정말 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고, 유아세례를 거쳐서 제가 신학대학 들어 갈 때도 성인세례를 다시 받았고, 신학대학 들어갔을 때는, 물론 목사가 되려고 들어간 사람이예요. 신학대학 들어가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평생 성경을 제 손에서 떼보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생물학을 전공하다가 신학대학을 들어간 과정에는 제 몸에 질병이라던가 여러 가지 실존적 고민이 있었고, 책에도 쓰여 있기 때문에 여기서 구구하게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으나, 신학대학 들어가서 보니까 뭔가 제 가슴에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에 있다, 내 인생의 뜻이 내가 목사가 되는 길보다는 무언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당시 제가 한국신학대학을 다녔는데, 그때 학교에 분란이 있었고, 여러 가지 시끄러웠어요. 한국신학대학 나옵니다. 고려대학 철학과로 옮겼습니다. 그 때 제가 존경하는, 그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장 영향이 깊었던 신학자로서 지금 돌아가셨지만 안병무 선생이라고 계십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독일에서 오래 공부를 해 보신 분이십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우리나라의 신학자입니다. 안병무 선생을 신학대학을 나오면서 찾아가 뵈었더니, 수유리에 살고 계셨는데, 안선생님이 당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신학대학을 떠나는 마당에 신학을 전공하시는 선생님을 찾아 뵌 겁니다. 제 진로를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그랬더니,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저 북쪽 분인 것 같은데, 당신의 아버님이 대단한 유학자셨데요. 대단한 유학자시고 한의사시고. 그래서 환자도 많이 오고, 사서삼경이 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분이고, 그렇게 엄격하고. 그런 분인데, 환자들이 바깥에 맨날, 옛날에 한의사라는 것이 사랑방에 약장 놓고 앉아있으면 환자들 진맥하고…. 여자들 진맥하시다가는, 이 양반이 하여튼 주색이 대단한 양반이었던 모양이예요. 당신의 어머님이랑 가족 속을 무지무지하게 썩히는 분이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자기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렇게 걸면 저렇게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서삼경이고 뭐고 아버지가 말씀하는 것은 죄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당시 자기 생각에 단순하게 유학이라는 것은 썩었고, 도저히 이것으로는 우리나라가 살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훌륭한 유학자였지만, 아버지와 반대되는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독교로 가게 된거다, 나는 신학을 했다.
사실은 우리 민족이 1세기 동안, 생각을 해 보세요. 기독교가 우리 땅에 엄청나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거야. 유학이 썩었기 때문이야. 유학을 가지고서 우리나라를 살릴 길이 없었어요. 우리 지성인들이 생각할 적에, 구한말에 우리 민족에 도무지 살 길이 없었다. 유학은 썩었고 희망이 없다. 그래서 새 희망의 빛줄기를 기독교에서 찾은 거예요. 하다 못해 술 담배 안 먹는 것만 해도 그것은 하나의 구원의 빛이었다, 이거야. 남녀가 같이 앉아 가지고 노래 부를 수 있고 찬송 부를 수 있고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감격이요, 그게. 유학이 제공하지 못했던 인간의 평등이고, 사랑의 메시지고, 희망의 메시지고. 복음이 들어왔다, 그말이야. 그런데, 그 안병무 선생한테 내가 떠나간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는 그렇게 한 세기를 걸어왔지만, 너는 이제 그 썩은 덤불에서 무언가 헤쳐봐라. 우리가 1세기를 이렇게 살아왔는데, 유학이라고 하는 썩은 검불을 이제 한 번 헤쳐봐라. 그래서 내가, 썩었지만 여기서 뭔가 건질 게 없겠나. 논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우리 언어였어요. 그러나 1세기 동안 단절된 언어예요. 우리가 완전히 쓰레기통에 내버린 언어입니다. 그것을 한 번 들춰보자는 겁니다. 그 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 독일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파헤치는 그러한 자세로 너도 앞으로 한 번 유교경전, 전통문화의 이런 위대한 경전을 파헤쳐 봐라. 자기는 불행하게도 그런 여유가 없는 한 시대 속에서 나는 신학과 더불어 살아 왔는데, 여기에서 나는 무언가 부족감을 느낀다. 너가 신학대학을 떠나서 딴 뜻을 가지고 간다는데 나는 찬성이다. 그 양반이 그 때 그런 말씀을 해주시던 것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우리 민족이 기독교에 대한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 온거고, 우리가 오늘 이 시점에서 내가 생각해 볼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기독교가 이땅에 와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한번 되짚어 보자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한세기 동안 진실하게 서구문명을 배우려고 노력했고, 기독교문명을 수용하려고 노력했고, 그런데, 한세기가 지난 오늘에 기독교가 그러한 우리 민족의 소망과 희망을 담아내고 있는가, 여기에 우리가, 나는 하나의 절규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내가 유학댕겼다고 하니까 우리 집이 돈이 많아서 댕긴 줄을 아는데, 나는 유학을 10여년을 댕겼어도 집에서 한 푼을 갔다 쓰지 않았어요. 전부 장학금 받아서 다녔어요. 우리 아버지는 억수로 돈을 번 사람이야. 일제 시대 때부터 의사를 했으니까. 그런데 자손한테 땡전 한 푼을 안 남겼다고. 우리 6남매들한테 땡전 한 푼 안 남기고 돌아가셨어요. 그 많은 돈을 어디에다 썼겠어요. 전부 교회에다 바친 거예요. 그러니깐, 거기에서 우리는 후회를 안 해요. 그러나 그렇게, 우리 형제들이 미국 가서 유학을 해서 받은 장학금을 아껴서 교회 성전기금을 보냈단 말이예요. 거꾸로. 우리뿐만 아니라 1세기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았는데, 그러한 우리 민족의 열망을 기독교가 담아내고 과연 있는가.
기독교라는 메시지가, 그 본질이 나는 단 한 자라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 바로 사랑이예요. 사랑!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무얼로 끝나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개는 다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잖아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치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KBS에서 [도올의 논어이야기] 2000년 11월 10일자분 도입부.

이른바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론에 비추어 볼 때, 도올의 스승 안병무의 유교에 대한 막연한 ‘반감’, 그리고 도올 자신의 어려서부터 체험한 기독교 일면에 대한 ‘반감’, 이 반감의 ‘말씀’들이 오늘날 도올의 기독교로 육화된 것(도올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이 마르시온의 복고를 가져왔다는 추론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둘째, 도올의 ‘심판주 유폐론’은 마르시온의 그것과 같다.

예수의 아버지와 여호와는 서로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규정한 마르시온에게 있어서 성부(聖父)의 당초 목적은 오직 영적인 세계만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물질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안에 인류의 육적인 세계를 창설한 것은 여호와라는 신의 무지 또는 악한 동기가 결과였다. 영지주의의 유산된 세계창설론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대목이다. 더욱이 성부 하나님에게는 질투나 복수심이란 게 없다. 마르시온에게 성부는 여호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인간에게는 어떠한 요구도 없는 분이며 자비로만 가득한 하나님이시다. 구원을 포함한 모든 것이 값없이 임한다. 그리고 복종이나 굴종이 아닌 사랑을 받기 원하신다. 이 지극히 높으신 지존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를 구원하고자 보낸 존재, 그가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은 또 아니다. 영지주의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악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처럼 마리아에게서 나셨을 리 없었다.

도올 자신은 이와 같은 마르시온의 선신과 악신의 이원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며, 마르시온의 복고를 꾀할 때마다 마르시온을 의식하지만, 앞서 구약 폐지론과 마찬가지로 도올은 기어코 구약의 하나님을 유폐시킨다. 마르시온의 심판주 유폐사상과 동기화 되고 있는 셈이다.

“변덕스럽고 폭군적이고 보복적인 구약의 하나님은 바울의 말대로 ‘율법의 저주’일 뿐이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이런 저주로부터 우리가 속량되는 것이다. 그의 해답은 매우 명료하다. 율법의 하나님이 아닌 복음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이 아닌 신약의 하나님은 무한히 은례로우며 자비로우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은 구약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전혀 몰랐던 하나님이다. 이 신약의 하나님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처음 우리에게 드러난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에게는 악의 요소가 없으며 하나님의 무한한 선의지에 의하여 우리는 속량될 뿐이다.” 김용옥, <기독교 성서의 이해> (서울: 통나무, 2007, 2012), 148.

이와 같은 도올의 ‘구약과의 단절성’ 주장은 마르시온과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의적 성경관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도올의 주장과는 달리 구약은 단순한 신약의 배경이 아니며, 오히려 구약으로 쓴 책이 바로 신약이었기 때문이다(이것이 양자의 강도 높은 결합력의 원천이다). 이 결합을 깨뜨릴 수가 없기에 마르시온은 다른 성경이 필요했던 것이기도 하다.

기독교성서의이해 (2007, 2012)

셋째, 도올의 자의적인 성경관은 마르시온에게서 온 것이다.

마르시온에게 히브리 경전은 성부 하나님이 아닌 여호와에게서 영감을 받은 산물이었다. 구약성경은 열등한 신의 말씀이기에 기독교 교육의 기초가 되어서도 안 되고, 교회에서 읽혀서도 안 되었다. 이러한 교의의 완성을 위해 마르시온은 자기들만의 성경 목록을 구성했다. 정경 중에서는 바울의 서신과 누가복음이 포함 되었다. 그 외의 기독교 문헌/경전은 유대인의 관점에 의해 훼손되었거나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누가복음과 바울서신에도 구약 인용이 많은데 그것은 후대에 첨가한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마르시온은 누가복음에서 유대교 또는 히브리 성경 부분을 제거하고 사용하기에 이른다.

도올의 마르시온과 같은 성경관을 보여주는 몇 가지 텍스트를 소개하겠다.

“생각해보라! 구약의 약(約)이란 계약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이란 ‘헌 계약’(Old Testament)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습관에서 확실히 알 수 있듯이 계약이란 새계약을 맺으면 반드시 헌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 새 계약을 맺을 때 헌 계약 증서는 찢어 버리거나 법적 효력을 발생치 못하게 만드는 장치를 반드시 한다. 헌 계약이 계속 유효하다면 새 계약을 맺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신봉하는 복음을 하나님과의 새 계약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신약’(新約, New Tstament)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구약은 폐기되어야 한다. 구약이 폐기되지 않으면 신약은 신약이 아니다.” 김용옥, <기독교 성서의 이해> (서울: 통나무, 2007, 2012), 141.

[성서는 누구나 편집 가능했다] 마르시온의 맹렬한 비판자 테르툴리아누스는 마르시온의 정경화 프로젝트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르시온은 도살장의 칼잡이 같은 놈이다. 지 마음대로 편의에 따라 성서를 칼질해댄다.그러나 우리는 이 최초의 마르시온 정경화 작업을 통해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 우선 당시 성서라는 문헌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문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편집이 가능했고 자신의 편찬목적에 따라 첨삭이 가능했던 것이다….
[초대교회에는 성경이 없었다] …이 무라토리 정경이야말로 정통파 신약의 최초의 모습을 알게 해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생각해왔다.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3서는 빠져 있다….
[예수의 저작] 한번 편안하게 생각해보자! 제일 좋은 기준이 무엇일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예수님의 말씀의 기록이 정경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일 확실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말씀을 기록으로 써서 남겼고 그 수고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제일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기록을 남기지 않으셨다…..예수는 저술가가 아니요 행위자였다……
[기독교는 경전종교가 아니다]… 그의 말씀을 써놓으라고 권고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출발부터 말슴(구두)의 종교요 행위의 종교다. 경전의 종교가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 160-8.

“이 사람들에게 Law(법)는 Pentateuch였어요…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레위기… 이 다섯 개의 경전이 뭐냐하면 유대민족이 애굽의 식민지로부터 탈출해서 가는 과정에 40년동안 시내 광야를 헤매는데 그 헤매는 동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놈들이 버릇이 없기 때문에… 이 자식들아 왜 버릇없고 난장판이냐… 딴 신도 섬기고 간음도 저지르고 맨날 그 사막에 사는 사람은 한 텐트 안에서 막 섞여 살기 때문에 근친상간이 심해요 그래서 그런 모든 터부(Taboo)… 뭐뭐 하지 마라.. 뭐뭐 하지 말라… 계속 ‘하지 말라’는… 모세오경이라는 것은 율법 천지에요… 여러분 성경이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구약(이 아니에요) 신약을 믿는 사람들은 구약을 믿으면 안 되요. 이것을 똑똑이 알아들어야 해요. 우리가 신약을 믿는 거예요. 구약을 믿는게 아니고 그런데 왜 구약을… 왜 성서에 붙여왔냐 하면 구약이란게 신약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적인 역사성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붙여 놓은 것뿐입니다. 이것을 떼어내자고 했는데… 초기 기독교 교단에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EBS 도올 김용옥 요한복음강해 12 구약과 신약

그의 저서 상에서 위 인용 본문이 기록된 구간은 매우 지능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내용상에서는 딱히 현재의 기독교 정경에 대한 도전이 있어보이지는 않지만 보다시피 각 단락의 표제들 곧 [성서는 누구나 편집 가능했다] [초대교회에는 성경이 없었다] [기독교는 경전종교가 아니다] 등은 경전에 대한 무위성의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예수의 저작]이란 표제에 가서 ‘기록된 말씀’이 아닌 ‘구전의 말씀’이 진수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결국 그 다음 최종적인 단계로서 도올의 사이비 복음서인 큐(Q)복음서로 진입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IV. 도올의 사이비 복음서 큐(Q)복음서

‘Q’란 ‘자료’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크벨레(Quelle)의 첫 문자에서 가져온 말이다. 이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려면 ‘공관복음’이라는 신학적 전제가 가져다 준 의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마가, 마태, 누가, 이들 세 복음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공관복음’이라는 전제가 생겼다. 즉 세 복음서는 공통된 자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공통점이 생겼고, 그리고 특수한 ‘다른 자료’ 때문에 차이가 생겨났다는 ‘믿음’에 토대한 연구 분야이다.

세 복음서 중 가장 이른 연대에 기록 된 것은 마가복음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마가복음서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본 자료가 되었고, 그리고 마가복음과는 별개의(마가복음에는 없는) 어떤 자료의 존재가 눈에 띄게 된 것, 그것이 바로 ‘Q’이다.

그런데 이렇게 ‘Q’라는 이름이 붙여진 약 242개의 성경구절을 모으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생긴다. 1) ‘사람의 아들’이 강조됨. 2) 이들은 다른 어떤 자료보다도 논쟁적인 요소가 적음. 3) 이들의 90퍼센트가 윤리적인 교훈으로 되어 있음.

다른 말로 하면 이 Q복음이 도올에게는 한마디로 <논어>였던 셈이다. 그의 고조된 심정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을 ‘가라사대 파편’(saying fragments)이라고 부른다. <논어>에는 공자에 관한 이야기(story-telling)이 없다. 오로지 ‘공자 가라사대’(子曰)로 시작되는 공자 말씀만 적혀 있는데, Q자료는 예수의 논어(論語)인 셈이다. 논어에 해당되는 희랍어가 로기온(Logion, 복수는 logia)인데 Q자료는 ‘로기온 크벨레’(Logion-Quelle)인 것이다.” 김용옥, <큐복음서: 신약성서 속의 예수의 참 모습, 참 말씀> (서울: 통나무, 2008), 17-18

큐복음서 (2008)

이와 같은 복음서에 대한 도올의 몰이해를 몰고온 전거를 이 장에서 파악할 것이다.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사이비 탈신화화, 2) 자의적인 복음서 규정, 3) 불교식 기독교 경전 기획.

첫째, 도올의 탈신화화는 사이비 탈신화화이다.

도올의 <큐복음서>를 보면 ‘불트만’이라는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그것은 도올이 자신의 자의적 복음서를 형성하고 규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방법론을 제시한 성서신학자의 이름인 까닭이다. 데카르트 이래 근대의 학문의 방법이란 게 (모든 것을 수용한 다음 타당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방식으로부터,) 일단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난 뒤에 가장 믿을 만하고 분명한 공리(公理)만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행하였다.

Rudolf Bultmann

소위 ‘방법적 회의’라 불리는 이러한 방식이 역사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성서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도 커다란 판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역사를 참작하여 읽는 태도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시대의 세계관은 본디 신화적이어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과는 큰 차이가 있기에 모종의 해석학적 여과장치를 상정해야 한다는 조류가 생겨났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이러한 학풍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역사 여과장치를 일컬어 탈신화화(demythologizing)라 명명하였다. 즉 성경에서 신화적인 모든 것을 제거해야만 참된 텍스트에 근접할 수 있다는 주장을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도올에게 얼마나 큰 서광으로 작용했는지, 그의 불트만에 대한 이해를 이렇게 담고 있다.

“불트만이 갈망한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를 논구할 필요조차 없는 케리그마 이전의 순결함을 우리는 Q복음서나 도마복음서의 진면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기독교는 불트만의 말대로 철저히 케리그마의 소산이다. 케리그마란 철저히 교회를 전제로 한 것이다. 교회란 부활에서부터 출발하는 사건이다.” 같은 책., 43.

이러한 이해가 도올로 하여금 <큐복음서>라는 사이비 명칭을 짓게 만들었고 뿐만 아니라, <큐복음서>야말로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는 억측에 가세하게 했다. 또한 그것이 결국에는 자신으로 하여금 참된 복음서의 형태란 <논어>의 형태라고 이해하게 만든 전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불트만의 탈신화화를 잘못 이해한 사이비 탈신화화 이론에 기인한다. 복음서만이 아니라 탈신화화의 가치까지도 훼손한 셈이다. 도올처럼 탈신화화를 오용하는 이들은 대개 불트만의 합리적이면서도 방대한 분량의 연구 본질을 얄팍한 이론으로 전락시키고 마는데, 그것은 불트만을 단지 철저한 이성주의에 입각한 사실주의자로만 오인해 영지주의나 만다이즘 따위와의 비교 행위를 통해 복음서를 훼손하는 학자 정도로(마치 자기네처럼)로 점용한데서 기인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불트만은 하나님(천상)과 세상(지상)과 저승을 철저히 구분해 놓고 오직 한 점― 그 점은 예수가 왔다는 사실(Daß)이고,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며,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이다 ―을 통해서만 만나도록 하는 방법으로써 예수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했느냐가 아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하고 행했느냐는 것이 핵심이라 요약했다.

이 하나님 행위에 대한 메시지인 신약성서의 케리그마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물론 불트만의 탈신화화 기획은 오히려 전승 과정에서 ‘해석된’ 모든 세계(신화)는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증적 과정에 기인하여 신앙을 전복시킨 인물로 점철되고 말았지만, 적어도 이 탈신화화 기획에서 불트만이 입증한 것은 바로 ‘예수가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떠났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행위”요,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라는 상(像)을 상정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결국 상징이나 텍스트를 신성한 현실에 이르는 창문으로 취급하여 마침내 축소한(reduced) 복음서를 제시했다는데 그 공적이 있다.

그런면에서 볼 때 도올의 <큐복음서>는 축소가 아닌 ‘해체의 이단’인 것이다.

결국 도올의 <큐복음서>의 이단성은 우선 불트만의 업적 가운데서 전승 과정만을 탈취했다는 점에 있으며, “예수께서 왔다는 사실”도 제거하고, “그가 떠났다는 사실”도 제거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십자가와 부활”을 제거하고서는 복음을 <논어>로 환골탈태시킨 이단성이라 하겠다.

둘째, 도올의 사이비 복음서는 자의적 성경이라는데 있다.

도올의 큐복음서가 사이비를 넘어 이단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정경 편찬의 원리를 무시함으로 마르시온의 전철을 밟았다는 사실에 있다. 마르시온의 정경 편찬이 이단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단지 주류와 전통에서 소외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부합하지 않는 특유의 본성에 기인한다. (도올이 이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정경 편찬의 본질 훼손이 과연 무엇인지, 마르시온에 의해 정경 편찬이 시도되었을 때 일어난 정통교회의 반응으로서 그 기준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전개가 있다.

초대교회에서의 정경은 한 사람(한 사도)에 의해 제안된 증언의 기초가 아니라 전체 사도의 전통에 합의한 바에 기초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는 성경 목록, 그 중에서도 신약성경을 집대성하려 한 최초의 노력을 가져온 것이다(도올은 도리어 마르시온이 선점한 정경 편찬의 시도를 자부하는 입장이다).

당시의 성경은 70인역 구약성서였으며 서신서와 여러 복음서에서 뽑은 구절을 낭독하는 데 그쳤다. 정경 편찬 이전이었으므로 여러 복음서를 읽기도 하였지만, 성서로서의 문집은 따로 없었던 상황이다. 그러던 중 마르시온에 대한 반동으로 정경 편찬의 동기와 움직임이 발호된 것이다. 마르시온에 대한 반동으로 착수된 ‘경전 목록’은 신약 문집의 목록을 정하는데 있어 그 세세한 부분에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브리 경전을 포함시키는 데 다들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히브리 경전(구약)이 기독교의 도래를 예비하신 하나님의 경륜의 증거인 동시에 기독교 신앙은 어느날 하늘에서 갑자기 출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망의 실현이었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마르시온과 도올은 구약을 부정해)

그런 다음 ‘신약성경’의 이름으로 각각의 복음서들이 인정 받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한 개 이상의 ‘복음서’가 구성된 것인가? 그것은 이미 일부 지방 도시의 교회들이 자체적인 복음서를 보유하고 있던 까닭이다. 가령 안디옥 지역에서는 누가복음이 사용된 예시가 그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다양한 복음서를 받아들이게 했다는 사실에 크나큰 의의가 있는데, 그것은 다양성 가치라기보다는 교회의 일치의 표식이라는 데 의의가 있었던 까닭이다.

대부분의 자의적인 성경 편찬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한다. 가령 영지주의는 특별한 제자(진정한 해석자)에게 맡겨진 비밀의 지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교회는 다름 아닌 일치의 표적 자체가 성경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의적인 성경과의 차이점이다.

셋째, 도올의 최종 목표는 ‘불교식 기독교 경전’이다.

우리가 도올의 <큐복음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도올의 최종적인 희망은 아마도 불교식 기독교 경전이라는 사실에 의심에 여지가 없다. 그의 포부를 눈여겨 보면 이런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문화 전통속에서 자라난 것이긴 하지만 유대인 전통 속에서 보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이단일 뿐이다.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신념 체계일 분이다…기독교에 대한 나의 결론은 매우 단순하다. 우리에게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한국인의 기독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풍류란 ‘우주적 기의 흐름’. ‘신기의 발로’…불교도 풍류의 불교가 되었고, 도교도 풍류의 신선도가 되었고, 유교도 풍류의 유교가 되었다. 물론 기독교도, 한국의 기독교는 풍류의 기독교라 해야 할 것이다….” 김용옥, <큐복음서: 신약성서 속의 예수의 참 모습, 참 말씀>, 3, 7, 11.

이것이 바로 도올이 그동안 전해온 기독교의 실체였던 것이다.

처음에 점화되었던 ‘구약 폐지론’, ‘구약의 하나님 유폐론’, ‘정경 해체론’, 이 모든 일련의 주장은 정통의 기독교에서 자신의 자의적 기독교를 탈취하기 위한 모종의 프로그램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중심축에는 바로 텍스트의 이단성이 있었던 것이다.

도올의 이와 같은 자의적 기독교 및 자의적 복음서를 대면함에 있어 한국교회는 다음 세 가지를 유념할 것이다.

첫째, 이와 같은 자의적 기독교가 수십 년간 공중파를 타며 전통에 도전을 해오는 동안 한국교회는 어찌하여 한차례도 이단성 여부를 판명하지 않았는가.

둘째, 성서신학계는 자신들의 근현대기 성서신학 분과 연구의 총화 중의 총화로 자부했던 ‘Q’ 이론과 그것에 부여했던 과잉된 권위를 도올의 사이비 복음서를 계기로 충분한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모종의 위대한 발견으로 여기던 ‘Q’란 한 마디로 그 어떠한 공동체도 읽은 적이 없는 존재하지 않는 문헌인 까닭이다.

셋째, 마르시온이 당대의 정통 교회에 선사한 유일한 긍정적인 반향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경의 중요성, 특히 구약과 신약의 합본을 정통 교회에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도올의 사이비 복음서를 계기로 환기해야할 사실이 무엇인지는 자명해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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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 새교회 새목회 (2013).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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