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 담론을 남의 나라 고대사로 빗대어 미안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리스 신화가 동서양을 초월한 만인(滿人)의 배설 문학이 되었듯이, 만민(萬民)의 역사 복고를 반영하는 경전의 지위를 획득하였기에 예시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경전에서 ‘민’(民)의 집합인 ‘국가’의 시작은 사무엘이라는 사제 겸 선지자에 의해 도입되었다. 사무엘을 가리켜 사제 겸 선지자라 말하는 것은 사무엘 이전 시대의 사제와는 지위가 약간 달랐으면서도 왕정 이후에 등장하는 선지자 군으로 분류하기에도 모호한 지위였기 때문이다.
사사 시대의 판관이었던 깡패들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성별 되었다는 점에서는 사제요, 왕정 시대의 선지자와는 달리 군사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군장의 지위였던 것이 바로 사무엘이다.
그런 그의 지도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이스라엘 왕정의 출발이다. 정경은 승자의 서사이기 때문에 사무엘을 당대 최고의 선지자로 묘사하지만, 사무엘이 이끄는 지파 동맹은 전쟁에서 결코 효과적이지 못했다. 가장 큰 적성 국가였던 블레셋이 상비군을 전개했던 것에 반해 사무엘이 관할했던 지파 동맹은 언제나 예비군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예비군 데리고 무슨 전쟁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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