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사 신간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홍성사 신간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홍성사에서 신간으로 나온, 세계관을 넓혀주는 책 한권을 소개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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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저입니다.

따라서 이 소개의 글은 저자의 저술 동기를 밝히는 글이기에 인사이드 한 메리트가 있겠습니다만,
출판사에서 작성한 객관적 리뷰가 좋으니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goo.gl/oMcR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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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의 집필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 이 책은 이 시대에 목사나 장로/집사의 아들들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걱정하는 마음에서 펜을 든 동기가 좀 있습니다.

2) 그래서 작가 심중에 내걸린 캐치프레이즈가 안티 해체(Anti-Dissolution)였습니다.

3) 그러나 공교롭게도 해체는 해체를 통해 깨뜨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 방법적 원리를 구현했습니다.

4)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리 시대에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만들어진 신의 기원’으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지만,

5) 최종적으로 이 책의 모든 읽기를 마칠 때 즈음, 우리의 참 신(true God) 로고스의 형상을 목격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6)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고의 지평이 획득했다면, 우리 사회에 이렇게 저렇게 흩어진 인간의 사고 패턴을 익힐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테면 이성(과학)만능주의, 이를 테면 공산/사회주의, 이를 테면 심리주의…구조주의.., 이들이 어떻게 옷을 바꿔 입고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나는지 알려줄 것입니다.

7) 끝으로 저는 성서신학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근본은 의도적으로 성서를 직접 핸들링 할 수 있는 확장성 강한 테제들을 기반으로 놓고 저술했습니다. 이 혼돈의 시대에 여러분의 신앙을 안전하게 지킬 줄 검(劍)을 소유하게 되길 기원하면서…

그럼 아래 저자 서문을 끝으로 이만…

 

 “만들어진 신의 기원에 관하여…”

신을 믿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 “나는 종교가 없습니다.” 라고 답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그 어떤 신과도 관계되어 있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대부분 자신에게 특정 종교가 없다는 사실에 기인 하지만 ‘아니오’라는 대답은 이미 신에 관한 강력한 전제를 띤다. 종교가 없을 뿐이지 신관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는 없을 수 있지만 신관神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근대 자연과학은 과거의 다신론이나 유일신론과 같은 유신론 범주에 그쳤던 신의 모습을 이신론, 불가지론, 불신론 등 다양한 형태로 내놓았다. 이 책은 그 흐름과 추이를 요약하고 배열하여 그 신으로서 명칭을 그 사변자 이름의 소유격으로 명명해 정리하였다. 이와 같이 기획한 일차적인 목적은 생각하는 능력을 배양하고자 하는 나의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함이지만, 이차적인 목적은 이들 신의 연쇄성 속에서 찾고 뽑고 추리고 융합하여 그 신의 정체성을 환원시키는 기술을 시연해 보이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이런 기술에 관한 오용과 남용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오남용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19세기까지의 예술 관념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즉 극에서는 기승전결이 있어야했다. 그래서 극이 유기적인 전체성을 이루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사건이 등장할 때에도 항상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복선을 미리 깔아놓아야 하는 것이다. 벤야민이 보기에 영화 매체의 특성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러한 유기적 전체성에 있는 게 아니라 파편적인 충돌에 있었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몽타주’라는 낱말의 의미 자체가 공장 생산에서 나온 것이다. 자동차 부품들을 조립하듯이 몽타주도 조립하는 것이고 유기체가 아니라 무기체적인 것을 다루는 기술이다. 예술은 유기적이지만 기술은 무기적인 것이다.” 진중권, <미디어 강의> 중에서. 그리고, 「진중권 철학 매뉴얼 아이콘」 (서울: 한겨례출판, 2011), 182-3에서.

현대 극 예술을 몽타주로 이해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아무런 이유 없이 찢고 오리고 느닷없이 갖다 붙이는 것인 양 정당화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무기체로 규정하는 오용이 “예술은 유기적이고 기술은 무기적”이라는 그릇된 견해를 낳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과 기술을 결코 분리한 적이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이나 찢고 오리고, 아무 때나 갖다 붙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책에서 선호하는 철학이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 특히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갖춘 원형의 모습을 보전함으로써 그 모방술의 원천을 지향한다. 예술Ars이란 말 자체가 기술Tekne에서 나온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 선호하는 몽타주 작업, 곧 미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것이 몽타주든 꼴라주든 융합할 때에, 그것이 지닌 본래 원형의 모습을 향해 찾아가도록 성실하게 화합해 나간다. 이것은 이 책이 선호하는 신학이다.

 

목차

 

index

프롤로그

1장_ 어거스틴·아퀴나스의 神, 본원성 / 장미의 이름: 도그마의 퇴조
2장_ 데카르트의 神, 이성 / 트루먼 쇼: 믿기 위해 의심함
3장_ 칸트의 神, 관념 / 어거스트 러쉬: 쉐카이나
4장_ 헤겔의 神, 합리성 / 레 미제라블: 사랑은 합리적인가?
5장_ 다윈의 神, 진화 / 진화의 시작: 신도 진화되었는가?
6장_ 마르크스의 神, 물질 / 매트릭스: 신성과 인성
7장_ 니체의 神, 허무 / 쇼생크 탈출: 노예의 도덕
8장_ 프로이트의 神, 무의식 / 인셉션: 자기 우상 파괴
9장_ 하이데거의 神, 존재와 현상 / 트루먼 쇼: 에고 에이미
10장_ 소쉬르의 神, 구조 / 큐브: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방언
11장_ 라캉의 神, 욕망 / 식객: 원죄 흔적
12장_ 데리다의 神, 해체 / 시네마 천국: 집중적이고 분산적인 신

◎ 다이어그램으로 보는 이원론의 변천 (1)
◎ 다이어그램으로 보는 이원론의 변천 (2)

에필로그| 기독교인이 영화 감상하는 법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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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도상해석학과 신학의 지평융합: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후 해체시대의Post Secular 새교회 새목회 (2013). | Fb/@pentalogia Twtr/@pentalogia | You can add my to your circles. 로 연결해 보세요.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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