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전 ‘남편 없이 잉태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묵상을 써놓고 보니 오해하기 딱 십상이었다…

 

매일묵상/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본문:

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ㅡ아가서 4:9-5:1

관찰:

1. 내 누이, 내신부야 (9, 10, 11, 12 절)
2. 나의 친구들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5:1절)

묵상:

3. 여기서 노출되고 있는 성(性)적인 메타포는 ‘신비’라는 주제로 묵상하여야.

느낀점:

4. 문학적 조예가 얕을 경우에는 자칫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성서를 문학으로 규정하고 볼 때 신화 텍스트, 법 텍스트, 역사 텍스트, 시 텍스트… 그 모든 장르를 다 운용하고 있으면서, 이에 더해 성(性)이라고 하는 메타포도 빠트리지 않고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찬사. 게다가 이 속(俗)의 텍스트가 고대에 정경(χανων)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경이.

해설:

5. 우선 이 난해한 (性的 메타포) 장르의 이해는 Christ-mysticism 즉, ‘그리스도의 신비주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궁극적 실재와의 일체성’과 또 그것에 대한 ‘직접적 체험’에 초점 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헌신을 표현하는 이 같은 언어가 ‘상승(ἀναγωγή)을 한다’는 전제 속에 포함된 것이다. 어떻게 ‘상승’을 한다는 것인가? 전통적으로 신비주의적 상승은 정화(κάθαρσις), 조명(ἔλλειψις), 그리고 합일(ἕνωσις), 이렇게 세 가지가 고전적인 방식이다. (특히 5세기에 들어서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카타르시스로 많이 알려진 ‘정화’라는 요소를 예로 들면, 그것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고대로부터 인식되어 왔다. 이것이 오늘 날에는 ‘요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심리학) 참조 할 것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신비적 이해가 헬라적 정서가 아닌 야웨의 전통 즉, 전통 유대교 신학에서 승인되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에 있다. 참고로 이 아가서라는 책은 AD 90년 경 대단히 보수적이었던 협의체 얌니아 회의(Council of Jamnia/Yavneh)에서 랍비 아키바(Rabbi Akiva)에 의해 정경으로 확정된다. 따라서 ‘신랑되신 예수’, ‘영혼의 신랑, 아 그대 하나님의 어린 양이여’… 등과 같은 중세의 그리스도에 대한 표현은 결코 헬라적인 양식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중요성이 있다.

결단과 적용:

6. 사실 인간은 자신의 실존 속 연인 혹은 배우자에게 조차 이 아가서와 같은 수사들을 전개하며 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앞서 대개 육체적인 텍스트라고 손가락질 했던 편견과는 달리 그것이 실로 문학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가서 텍스트를 “왜 이리도 속(俗) 된 것이야?!”라고들 하지만 그것이 지극히 영적인 것이라는 반증은 대부분 기록을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쓰고 기록하는 것은 매우 영적인 에로스(ἔρως)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

[cf. 필레오(φιλέω)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할 것]

 

기도:

7. 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해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너― 기록된 이 사랑(ἔρως)에 대해서 저들이 알게 하소서
우리― 우리도 쓰게(writing) 하소서

그림묵상:

“The Little Garden of Paradise”–believed to have been painted between 1410 and 1420 by an anonymous German painter known as the Upper Rhenish Master–was inspired by Song of Solomon.
“The Little Garden of Paradise”–believed to have been painted between 1410 and 1420 by an anonymous German painter known as the Upper Rhenish Master–was inspired by Song of Solomon.

cf. Lectionary, Wednesday (January 20, 2016): Psalm 145; Song of Solomon 4:9-5:1; Luke 5:33-39.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Twtr |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 파워바이블 개발자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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