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질 만한 불, 소멸하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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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질 만한 불, 소멸하는 불

 

서기 3978년. 테일러 외 두 명의 우주비행사는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 바다에 불시착했음을 깨닫는다. 불시착한 그곳은 지구와 환경이 비슷하지만 다른 행성이었다. 행성을 탐사하던 테일러 일행은 곧 생명체를 발견하지만(그들은 유인원이다) 말을 타고 총을 쏘는 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 행성에선 인간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미개한 종족이며, 유인원만이 언어와 기술을 습득한 진화된 종족이다. 일행 한 명은 총에 맞아 죽고, 테일러와 남은 한 명은 생포되어 유인원의 도시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테일러의 동료는 강제로 뇌수술을 당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고, 테일러는 유인원인 지라 박사 눈에 들어 약간의 지능 있는 특별한 인간 취급을 받는다. 테일러는 이 낯선 유인원 사회에 엄격한 계급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고릴라는 경찰, 군인, 사냥꾼 역할을 하며, 오랑우탄은 행정가, 정치인, 변호사, 마지막으로 침팬지는 지식인 및 과학자 계급이었던 것이다. 고릴라들은 테일러가 유인원 사회의 근간을 파괴하고 혁명을 이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테일러를 죽이려 하지만, 침팬지 지라 박사와 코넬리우스는 테일러의 탈출을 돕는다. 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한 테일러는 결국 고릴라들에게 잡혀 다시 끌려온다. 결국 테일러는 재판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지라와 코넬리우스는 사촌 루시우스의 도움을 받아 테일러를 유인원 도시 밖의 금지 구역으로 데려간다. 코넬리우스는 금지 구역에서 이전 문명의 유물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 금지 구역에 다다른 테일러는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혹성탈출, 1969. 출처: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bsstory&logNo;=50153822024)

이 영화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성역 곧, 신성한 곳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신성한 곳, “거룩한 곳”이라는 말은 “금지 구역”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거룩한 것은 선한 것인데, 그 선(善)이 금지되어 있다?

본론 | 만질 만한 불

히브리서 12장에는 두 종류의 불이 언급된다. “만질 만한 불”과 “소멸하는 불”.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이 있는 곳이 – 아마도 시내산 – 아니라고 말하면서, 지금 있는 곳은 시온산이라 말하고는, 불 역시 소멸하는 불로 대체되었음을 공지한다. 불은 하나님의 메타포로 전자는 만질 만한 불이었지만, 후자는 (만질 수 없는) 소멸하는 불이라는 것이다. 전에는 만질 수 있던 불이 이제는 만질 수 없는 불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 같은 불의 이행을 통해 나타나는 ‘금기’의 관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신성하다.

모세가 장인의 양무리를 칠 당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났다. 그 때 모세가 좀 더 가까이서 보고자 다가섰을 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말한다. 이는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취급되어왔다. 성서는 이 부분을 하나님과 사람이 대면하는 첫 장면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신 상대는 모세뿐 이었다고 성서는 증언한다(출 33:11). 그리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온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하고 나면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릴 정도였다. 사람들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모세의 이러한 권위를 종교 지도자들이 고스란히 받아간다. 과거나 지금이나.

(2) 위험하다.

물론 성서에서 모세 이전에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많다. 그러나 호렙산(시내산)에서 모세와의 대면을 처음으로 꼽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과의 법정적 관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정적’이라 함은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다짐이 비로소 법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법을 토대로 긍정형 조문 248가지와 부정형 조문 365가지가 구성되는데 그것은 유권해석에 따라 더욱 확장되기에 이른다. 가령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가 병에서 놓임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만, 그 상황에서 안식일을 엄수 하지 않은 죄에 묻는 경우가 그 한 예다(눅 13:10-17).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백한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지키느냐에는 많은 변수와 해석이 따랐기 때문이다. 오로지 ‘위험하다’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3) 깨끗하다(더럽다).

‘금기’에 관한 세 번째 개념은 ‘더럽다’(깨끗하다)이다. 오물 만지던 손으로 식사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의 결례는 그 더러운 손에서 오물을 씻어내는 데에 근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담갔다가 건지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면 일종의 강박인 동시에 쾌(快)인 것이다. 예컨대 유대인들의 코셔는 건강/웰빙인가? 종교인가?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강박인가? 모두 같은 것이다.

이들 세 가지로써 고대인에게나 현대인에게나 종교적 영향력은 행사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00여 년 전이었던 히브리서 저자가 이미 그 불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이행시키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소멸하는 불(혹은 강렬한 불)이라는 말은 히브리서 저자의 일종의 워딩으로서 마치 뭔가 더 강한 저주를 내리는 불이라는 표현 같지만 실상은 역설적으로 “만질 만한”에 대조된, “만질 수 없는,” 즉 “없다”라는 의미로서 이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전에 강박으로 압박했던 그 모든 터부들이 이젠 없어져버렸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 | 소멸하는 불

그 거룩한 성역에 대해 심증을 굳힌 테일러는 목숨걸고 그 금지 구역 진입한다. 거기서 유인원이 지배하는 이 행성이 사실은 인간이 지배했었던 곳이라는 사실까지도 알아낸다. 인간과 유인원 지위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해변을 따라 걷던 테일러는 그 행성 끝에 다다라 무릎을 꿇고 깊은 탄식과 함께 이런 말을 내뱉는다.

“맙소사, 내가 돌아 왔구나.”

우리가 만질 만한 불에 관한 강박에 시달리는 한 그것은 다 파괴된 자유의 여신이 들고 있는 돌로 된 불을 만지게 됨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12장 마지막 절 “소멸하는 불”에 관한 주석이다.

* 2013.8.25일자 | 히 12:18-29. (c.f. 렘 1:4-10; 시 71:1-6; 눅 13:10-17.)

 
 
 


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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