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원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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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원리에 대하여

프롤로그 | 아합의 아버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면서 남쪽은 유다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북쪽에서 가져다 썼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대로 남 유다는 다윗의 정통성을 이어받았지만 북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다윗의 이상을 이어 받지 못한 것으로 성서는 기록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그들에게는 왕위를 둘러싼 정변이 계속되었다.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을 설립한 이래 열 아홉 명의 왕이 바뀌는 동안 여덟 명이 살해 당했고 다섯 번의 큰 정변이 발발했다. 200년 새의 일이다.
남 유다보다는 땅도 많이 차지했고 인구 수도 더 많았지만 북 이스라엘이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항상 국가 존립의 위협과 마주 섰던 여로보암의 후예들은 어떤 이상과 정통성을 유지·발전시키겠다는 이데올로기 면에서는 상대적 열세를 면할 수 없었는데, 그에 따른 영적 이질감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측면을 넘어 문화적이고 신앙적 유연성으로 폭넓게 번져 나갔다. 아합 왕과 이세벨이라는 인물은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것이며, 아울러 엘리야와 엘리사 같이 그들을 견제하는 강력한 선지자들도 잇따라 출몰하기에 이른 것이다. 
비록 722년경 멸망 당하지만, 북 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아합의 아버지인 오므리의 왕조는 강력한 왕조였다. 이세벨이 상징하듯 정략 결혼을 통해 안정과 번영을 누렸으며 그에 따라 군사력도 강대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윗 보다도 지명도 있는 왕조였다. 역사에서만. 

프린서플 | 사라지는 체험 남게되는 체험.
역사라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세속적 용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역사적’이라는 말이 신앙적 조어로서 들려오면 현대 그리스도인은 뭔가 확실한 증빙이 붙은양 의미심장하게 받아 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믿지 않겠다’는 공리를 깔고 있다. 그래서 관념어에 강한 독일어 같은 경우는 실제 발생한 역사로서 히스토리에(Historie)와 전설 따위로서 역사, 게쉬히테(Geschichte)를 구별해 쓰기도 한다. 예수는 히스토리에지만 부활은 게쉬히테라는 식이다. 그렇지만 부활을 설령 게쉬히테라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가령) 내가 누군가와 만났다는 사실은 분명한 나의 히스토리에임에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저들에게는 내가 그와 백번을 만났다한들 게쉬히테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히스토리에든 게쉬히테든 내가 사랑하는 그(녀)와 만났다는 경험이 달라질 것은 없는 이치이다. 
본문에서 한 과부의 가정이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삶과 죽음의 체험을 했던 경험은 엘리사를 만난 과부의 가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난 과부의 가정이 체험한 바로 그것은 우리 각자 삶의 체험 속에서도 영구히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띠며 임한다.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오다.
엘리야는 과부의 아들을 죽은 상태로 받아 안았고, 엘리사는 죽은 아이를 자기의 침상에 드러뉘였으며, 예수께서는 나인 성에서 죽은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과부에게 다가가 불쌍히 여겼다. 
죽은 것을 하나님의 사람이 살려서 돌려주다.
엘리야는 아이 위에 자기 몸을 3회 펴서 엎드리며 기도했고, 엘리사는 3곳 즉 입과 눈과 손을 맞대고 기도했으며, 예수께서는 죽은 자에게 직접 말로 명하여 살리셨다. 그리고는 살아있는 상태로 돌려주셨다(왕상 17:23; 눅 7:15).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엘리야를 만난 과부는 아이를 살린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를 고백한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하던 과부의 아이를 살린 것이다. 예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을 때는 모든 사람이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고 하였다. 

에필로그 | 다윗 왕가와 오므리 왕조.

인간의 삶은 두 번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번은 자기 체험(Geschichte) 속에서, 그리고 타자의 회자(Historie) 속에서. 그리하여 어떤 것은 구속사에 산입 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역사에서 조차 잊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우리가 경험했던 체험 속에서 영구히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누군가의 체험과 연결되는 것 뿐인데, 특히 사르밧 과부, 수넴 여인, 나인 성 과부처럼 하나님의 사람과 연결되었을 때 그 체험과 존재는 영원한 것이 된다. 다윗과 오므리 왕조의 역사적 편차도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미지 참조:
wikipedia.org.jpg
www.biblicalarchaeolog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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