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와 히포크라테스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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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와 히포크라테스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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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의 의료

유대인은 하나님의 율법에만 순종하면 건강을 보장 받는다고 믿었다. 그 율법에는 여러 건강 관련법이 포함되어 있다. 정기적인 휴식, 양질의 음식, 오염된 물 엄금, 결혼 규정, 청결, 전염병 격리 등에 관한 규정이다. 형법과 연계된 이런 위생법은 다른 주변국보다 높은 수준의 건강을 안겨줬다.

하지만 건강이 형법 원리와 연결된 결과, “율법을 어기면 질병이 생긴다”는 저주의 원리로 작용했다(참조. 신 28:60-61).

그리고 유대인은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의사에게 의지한 사람은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받았다. 역대하 16장 12절의 아사 왕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치병의 올바른 절차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민 21:7; 왕상 20; 대하 6:28-30; 시 6; 107:17-21).

다른 나라의 병에 관한 태도는 유대인과 사뭇 달랐다.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질병은 악령의 활동에 대한 결과로 진단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이 의사의 역할이다. 의료 행위가 마술 수준에 그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미개한 마술 행위 속에서도 수술을 통한 의학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들에게는 의료 행위를 통제하는 법도 있었는데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남성이 구리 랜싯(의료용 양날 칼)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눈을 수술했을 때 그 사람이 눈을 잃으면 의사의 눈도 같은 구리 랜싯으로 빼내야 했다.

한편 이집트인은 뇌수술에 능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수술을 감행했다. 악령이 빠져 나가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내부의 압력이 완화되면 그것을 치료라 느꼈다. 이런 기술은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가나안족의 후예 라키슈(Lachish)에서도 시술되었다. 또한 이집트인은 치과 진료를 했으며 일부 페니키아인은 금니를 소유하고 있었다.

주변국의 의료에 대한 이런 이해는 앞서 유대인의 신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유대인 중 일부는 악령을 막기 위해 부적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욥기가 기록될 무렵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욥의) 병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선언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하기 200여년 전 기록인 전도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치유자이시며 사람에게 치유의 선물을 주셨다고 전한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유대 민족의 상태에는 정화, 붕대, 연고가 필요하다고 했다(사 1:6). 아사 왕의 경우처럼 의사들은 주변에 존재했으며, 출애굽기 21장 9절은 사지가 다쳤을 때 목발을 사용하였음을 암시한다. 히스기야는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찜질을 한 것 같다(왕하 20:7).

몰약과 섞인 포도주가 진통제로 사용되었는가 하면(참조. 마 27:34), 맨드레이크 뿌리는 임신을 돕는 것으로 여겨졌다(창 30장).

이미 모세가 갓난아기였을 시대부터 조산술이 성행했다(출 1:15; 겔 16:4).

Healing of the Man Born Blind, painted by El Greco in 1567

예수시대의 의료

예수님 시대에는 도리어 의학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를 보인다.

마가복음 1:32-34에는 질병에 관한 당시의 인식을 보여준다. 질병에는 나병, 역병(이질, 콜레라, 장티푸스)뿐 아니라 시력을 잃는다든지, 청각장애 같은 장애가 포함되었다. 간질이나 기타 신경 장애도 존재해왔다(참조. 삼하 12:15; 왕상 17:17; 왕하 4:20; 5:1-14; 단 4:33).

그런데 유대인은 앞서 의사들을 수용한 선조들과는 달리 의사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질병과 죄의 연관성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참조. 요 9:2). “의사는 자기 스스로를 고치라”(눅 4:23)는 경멸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마을에는 의사가 있어야 했음은 분명하다. 여성출혈병 문제로 해당 여성이 여러 의사와 상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막 5:26). 성전에는 언제나 의사가 상주했다. 그런데도 마가는 의사에 대해 부정적이다 (막 5:26).

예수님의 태도는 구약과 모순되지 않았다.

그는 질병을 세상에서 사탄의 악한 활동의 ​​결과로 여기는 듯 보였다. 그러므로 싸워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질병이 반드시 개인의 죄의 결과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요한복음 9장이 그 명백한 경우이다.

길을 가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인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의 삶에 나타나도록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예수께서는 질병이란 영혼이 그 질병을 소유한 결과임을 또한 수용했다(마 12:27).

초대 교회 시대에 기독교 사회가 의사를 받아들이는 일에 가속화한 데에는 질병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정의에 근간한다.

이제 의사로서 누가는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의 명시적 동반자이다(골 4:14).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누가를 생각할 때 오늘날의 의료 수준에 의거한 첨단 과학도로 여기지만
전통 유대교에서는 수용을 주저하는 주술이요
새로운 세대에게만 유용한 과학이었을 것이다.

즉 누가의 등장은 의사/의술의 수용 여부에 관한 상징적인 일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는 그리스인이었고 당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의술 학교들이 여럿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상징된 헬레니즘의 의료가 초대 교회 특히 바울의 선교 여행에 동반되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이해와 지식이 선교의 주요 동력으로 활용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독교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와 함께 종교의 선진화를 꾀하였다면,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는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통하여 대중화를 이룩한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초엘리트 왕족들이 의사들을 공공재로 전락시켜 자기 자식들에게 기술을 빼돌리려는 이때에 이들 고대 사회 의료인들의 생존의 방식을 세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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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JIN LEE李榮振 | Rev., Ph. D. in Theology. | University Lecturer | 저서: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 (2017), 영혼사용설명서 (2016),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 (2015), 자본적 교회 (2013), 요한복음 파라독스 (2011). 논문: 해체시대의 이후의 새교회 새목회 (2013), 새시대·새교회·새목회의 대상 (2011), 성서신학 방법에 관한 논고 (2011). 번역서: 크리스티안 베커의 하나님의 승리 (2020). | FB | Twtr | 개인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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